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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Feb 20. 2019

타이베이가 광주에게

<반교(返校) -Detention(디텐션)- > (2017)


- 광주 민주항쟁 (1980) -

최근 광주 민주항쟁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에서 이에 대한 왜곡 발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이 지나간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참으로도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들과 싸워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항상 우울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사를 즐겁게 기억하는 방법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중 하나가 게임일 것입니다. 제가 광주 민주항쟁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임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980년의 광주를 소재로 한 게임은 아닙니다. 한국이 아니라 대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시사하는 점은 많습니다. 의미뿐만이 아니라 게임 자체도 훌륭합니다.


-<반교(返校) -Detention(디텐션)- > (2017)-


바로 <반교(返校) -Detention(디텐션)-> (2017)입니다. 2017년 1월에 출시한 게임으로 장르는 공포입니다. 플레이 결과, 근래에 나온 공포게임 중에서 완성도가 높은 축에 속합니다. 최근에는 후속작도 나온 게임이죠. 시나리오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게임을 리뷰하는 사람이 아니고, 또한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내용이 나올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세부적인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꼭 해보세요. 재밌습니다.

이 게임이 도대체 광주랑 무슨 관련일까요? 한국 게임도 아니고, 대만 게임인데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혹시 광주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일까요? 아닙니다. 이 게임의 배경은 1950~60년대의 대만입니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하면, 뭔가 감이 좀 오지 않나요? 그런데도 ‘음 뭐지?’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 시기의 한국은 어땠나요? 정치적으로 어떤 분위기였는지 아시나요? 그야말로 암흑기였죠. 이승만 독재가 마무리되어 자유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또 다른 독재가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대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만은 장제스 총통이 국공내전에서 패전한 다음, 본거지를 대만으로 옮긴 상황이었습니다. 중국 국민당의 마지막 보루였던 대만. 대륙에서 쫓겨났지만, 대만이라도 잘 지배했다면 그나마 행복한 결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습니다. 장제스는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사회를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발생한 사건이 2.28 항쟁입니다.

2.28 항쟁은 아직 장제스가 대륙에 있던 1947년에 일어난 항쟁입니다. 당시 린쟝마이라는 여성이 정부만 팔 수 있었던 담배를 노점에서 팔고 있었는데, 이것을 단속하던 경찰과 회사 요원에 의해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단속이라고는 했지만, 총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심한 구타가 이어지자 사람들의 시위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이를 구경하던 천원시라는 학생이 경찰이 발포한 총에 의해 사망하게 됩니다. 그동안 진행되던 외성인(대륙에서 건너온 세력)과 본성인(원래 대만에서 살던 주민들)들의 차별 등등으로 불만을 품고 있던 대만 민중들의 분노가 이때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그리하여 1947년 2월 28일, 이들은 대대적인 항의집회를 벌입니다. 집권세력은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타이베이에 계엄을 선포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총궐기를 호소합니다. 시민들은 파업, 무기고 습격, 방송국 점거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는 곧 대만 전체로 퍼집니다. 이에 대만 집권 세력은 결국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2.28 항쟁 (1947)-


하지만, 이는 기만적인 전술에 불과했습니다. 대만의 지배 세력들은 장제스에게 국민혁명군, 그러니까 당시의 중화민국군 파견을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군인이 대만으로 향했고, 1947년 3월 8일부터, 학살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만은 그야말로 피로 물들게 된 겁니다. 이 학살은 당해 3월 21일에 진정되었으며, 장제스가 5월 16일에 사태의 마무리를 선언함으로써 종료됩니다. 현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항쟁의 사망자는 최소 1만 8천 명에서 최대 3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2.28 항쟁에 대한 대대적 탄압은 대만 민주주의를 사실상 말살시킨 희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1949년 12월에 장제스는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본거지를 옮깁니다. 대만에서의 2.28 항쟁을 잘 알고 있던 장제스는 불만을 뿌리부터 뽑기 위해, 대만을 철저하게 탄압합니다. 그 과정 중 하나가 1949년 5월 12일에 발효된 계엄령입니다. 이 계엄령이 해제된 것은 1987년의 일입니다. 38년 동안 계엄령의 상황에서 대만의 민주주의가 억압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면, 반교라는 게임이 공포게임이라는 장르로 괜히 설정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게임 플레이가 무겁게 느껴질 겁니다.

반교가 알려주는 이런 역사적 상황의 의의는 간단합니다. 일상을 파괴하는 권력의 무서움.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그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대만에 뿌렸습니다. 목숨을 감수하면서까지 뿌렸습니다. 지금의 자유는 이들이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요? 아직 이 사실의 주동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국가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가해자는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기괴한 상황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타이베이가 광주에게 말하는 메시지기도 합니다. 대만에서 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이 장제스라는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건재한 정치세력인 중국 국민당은 이를 거부합니다. 방금 언급했듯이, 가해자는 한 사람도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비극은, 영원히 비극으로 남고 있습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진실은 가려져 있습니다. 오히려 부정을 두둔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세력들이 넘칩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은 법정에 서기는 섰으나, 금방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실을 기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행동을 막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반교가 단순히 순수하게 공포게임으로써만 무섭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섭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그래 왔습니다. 이제 그걸 실현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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