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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May 21. 2019

당신도 할 수 있다! - 음모론 전문가 이론편

음모론 제작의 13가지 원칙

프리메이슨이라고 여겨지는 유명 인사들

음모론이 판치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안 그랬던 시대가 없다. 음모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음모론은 활발한 생명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음모론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이 발견되고, 그 패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누구나 음모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여러분을 훌륭한 음모론자로 만들어 주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글은 두 부분 ‘이론편’과 ‘실전편’으로 나누어 연재될 것이다. 이론편에서는 음모론을 만드는데 13가지 원칙을, 실전편에서는 적절한 사례를 하나 가져와, 이론편의 원칙으로 분석해보겠다.


(이 글은 진지한 글이 아니다.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지 말기를, 나도 장난으로 쓰고 여러분도 장난으로 읽겠지만, 혹시 모르니 유의하시라)

1. 반드시 나쁜 일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규모가 어떻든지 당신이 음모론을 제기하려는 상대가 하는 일은 나쁜 일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나쁜 일을 직접 하는지 간접적으로 하는지는 상관없다. 나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당신이 아는 음모론만 생각해도 좋은 일과 엮이는 예는 없다. 달 착륙 음모론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을 속이는 불순한 짓을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많은 음모론 중에서 약과에 불가한 수준이다. 실제로 당신이 적용 가능한 나쁜 짓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만일 당신이 그 나쁜 짓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세계구급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류 소거’ 같이 간단한 것을 기반으로 해서 음모론을 짜도 상관없다.

2. 사소한 것에서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음모론자들은 사소한 일에서 거대한 것을 끄집어내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재능의 단점은 사소한 일이 정말 사소한 것에 끝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상의 상황을 하나 생각해보자. 당신이 길을 가는데 삼각형 모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나 주웠다고 해보자. 주인을 찾아보니 부유한 백인 남성이다. 당신이 목걸이를 돌려주니 “엄청 중요했던 겁니다!”라고 당신에게 감사하며 사례를 하면 보통 사람들은 ‘아 정말 소중한 목걸이인가 보다.’하고 넘어가지만, 당신과 같은 음모론자들은 ‘삼각형과 부유한 백인 남성’이라는 키워드로 너무 쉽게 그 남성을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 단정 짓게 된다. 음모론자들은 보통 ‘사소한 것에 의심을 품어라’라고 조언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하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거대한 억측을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3. 비밀조직과 엮는 것이 좋다.

비밀조직은 음모론의 필수다. 보통 음모론자들은 규모가 큰 음모론을 제시하고 그것들은 도저히 한 사람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거대한 비밀조직과 같이 돌아다닌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있으며, 이 두 단체의 상징과 이름만 잘 이용하면 당신은 벌써 음모론계의 신동이 되어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 비밀 단체의 비밀은 표면적으로 비밀인 경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대놓고 활동하는 단체도 비밀 단체라고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각국의 정부와 정보기관이 있다. 심지어는 죽은 단체를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한데,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나치와 일루미나티다. 나치는 1945년 공식적으로 사라졌고(네오 나치는 별건으로 취급한다.), 일루미나티는 1790년에 소멸하였지만 여전히 음모론자들의 사랑을 받는 조직이다.

4. 과학으로 공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치적인 음모론은 의외로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오지 않는다. 의외로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프리메이슨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음모론자들이 어떤 모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국가의 사례들을 짬뽕해서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음모론자들이 예상하는 반응은 잘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특정 정치사상을 지지하고, 그 지지자들을 위한 음모론을 만든다면 정치적 음모론은 가장 훌륭한 소재이다. 박사모의 탄핵 사기론을 생각해봐라)


그런 이유로 대중적이고(혹은 그러고 싶은) 음모론자들은 과학을 소재로 삼기 시작한다. 백신과 유전자 재조합 식품 그리고 기후 조작 등등. 자연재해는 추상적으로 말해도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한데, 음모론자들이 조작된 수치나 왜곡된 과학자들의 말을 들고 와서 공포감을 조성한다면 대중에게 바로 먹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돈까지 되는 예도 있으니 당신이 음모론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고 그것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과학을 소재로 삼고 ‘자연 치유’ 등을 떠들면 적절할 것이다.

5. 당신은 정의롭다.

맨 처음 원칙에서 상대를 나쁜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음모론을 제기하는 우리는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한다. 다만 그 정의가 무엇인지는 자신이 표적을 삼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것인데, 정치적 음모론의 경우는 대부분 근본주의 개신교계를 향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정의감에 충만한’ ‘진정한 하느님의 성도’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받는 불신이 크기 때문에 이런 접근 방식이 싫다면 ‘깨어있는 시민’이나 그저 자신을 사회를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포장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은 진실의 순교자 혹은 이 시대의 참된 시민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6. 상징은 중요하다.

아무리 당신이 프리메이슨이니 신세계질서니 떠들어대도 대중은 당신의 음모론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주지 않는다. 교황이 19세기에 무슨 미사를 집전했는지 어떻게 모두가 기억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당신이 성공적인 음모론자가 되려면 상징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필수다. 프리메이슨 하면 삼각형, 악마 하면 666인 것을 생각해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주의할 점은 당신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서 대박 터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기존의 음모론에서 나오는 상징들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7. 공부하라.

대중이 생각하는 음모론자의 이미지 중 하나는 그들이 멍청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일 뿐이다. 사소한 것에서 어떤 거대한 의제를 끌어내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음모론자들의 노력을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음모론의 영역에서도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저 아무거나 주워 와서 짜깁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소리다. 믿지 못하겠다면 당장 서점에서 ‘그림자 정부’를 살펴봐라. 상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자료 수집력이나 음모론자들 나름의 논리 체계를 보면 그저 재미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더욱이 당신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또한 기존의 음모론자와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면 ‘유식’해 보일 필요가 있는데 공부는 이것을 어느 정도 보충해준다.

8. 비장해져라.

당신은 정의의 편이고 음모론 상대는 악의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알리는 당신이 위험해지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음모론을 제기해도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당신은 목숨을 각오해야 한다. 어느 날 무서운 아저씨들이 당신을 납치해서 비밀기지에서 고문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모론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음모론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음모론자들의 특성이 사소한 것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가해지는 위협도 쉽게 창조할 수 있다. 그 정도로도 긴장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9. 또한 당신은 뻔뻔해져야 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이 단계를 잘 따라왔다면 분명 당신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들은 증거를 들고 와서 당신의 주장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논파한다. 그러면 당신은 당황하고 많은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인데, 음모론적 글쓰기가 완성되려면 당신은 이 단계에서 잘못을 시인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파들을 ‘국정원 프락치’ 등으로 매도하며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우겨야 한다. 그렇게 해도 당신을 지지해주는 소수의 사람은 남는다.

10. 생산은 빨라야 한다.

음모론도 경쟁 시대다. 고전적인 음모론도 여전히 유효한 떡밥이지만, 당신이 좀 더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음모론적 요소를 빨리 잡아서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 생산에는 크게 세 방식이 있는데, 새로운 사건을 기존 음모론 요소와 연결하는 것, 새로운 사건을 기존 음모론 요소와 연결하면서 색다른 요소를 첨가할 것, 마지막으로 아예 새로운 음모론을 재창조할 것이 바로 그렇다. 첫 번째의 경우 난이도는 쉬우나 여러 음모론에 묻혀 금방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세 번째는 당신의 상상력이 빈곤할 수도 있고 기껏 만들었더니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방향을 선택한다면 두 번째가 가장 좋다. 기존 음모론과 이어서 새로운 사건을 설명하되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는 이야기를 해라. 백신을 프리메이슨의 인류 멸망과 연관 지으면서 북한의 폐쇄적인 외교 정책이 프리메이슨의 백신 보급을 막기 위해 있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쉽다.

11. 역음모론을 이용하라.

음모론 자체도 음모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역음모론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묻으려고 터뜨린다.’가 있다. 이런 역음모론들은 당신이 다른 음모론자들을 공격할 때 가장 써먹기 좋은 소재다. 남들의 음모론은 CIA가 뿌린 가짜 뉴스이며, 자신의 음모론이 진짜라고 하면 간단하게 새로운 음모론을 만들 수 있다. 당신의 경쟁자들이 너무 커버렸고, 새로운 음모론을 짜기 귀찮은 날에 유용하게 써먹어라.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는 없지 않은가?

12. 가끔은 패턴을 바꿔야 한다.

음모론자들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이유는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음모론적 글쓰기의 원칙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이쪽 세계의 현실이다. 당신이 이런 과정을 거쳐 성공적인 음모론자가 되면 어느 날부터 소재를 짜기 힘들어 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때로는 이 원칙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음모론을 짜는 일도 해봐야 한다. (물론 몇몇 원칙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규모의 크기를 줄이거나 키우는 것이다. 크기를 줄이는 경우 거대 세력을 등장시키지 말고, 다소 김 빠지는 음모론 대상의 목적을 제기하며, 소재도 생활에서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하라. ‘비둘기는 전시 비상식량’ 같은 훌륭한 예시가 있다. 키우는 경우는 신중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음모론자가 제기하는 음모론의 크기가 너무 커서 더 크게 키우면 신의 영역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동안 작성한 음모론들을 보고 음모론의 규모가 ‘국가’ 단위인 정도인 경우에만 크기를 키워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방법이 적절하다. (당신에게 종교가 있고, 그 종교가 자신의 나라에서 극단적인 신도를 많이 끌어 모은다면 신의 영역도 감히 도전할만하다.)

13. 근성이 있어야 한다.

일회성에 그치는 음모론은 음모론이 아니라 그저 허황한 소문에 불과하다. 당신은 대중에게 계속 같은 음모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야 한다. 사건마다 당신의 그 음모론을 계속 적용하여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야 적어도 대중은 당신의 음모론을 ‘이상하지만, 일관성은 있다.’라고 여기고 그중에는 넘어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렇게 근성 있게 제시한 음모론이 조금이라도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 그러면 당신은 음모론자의 영역을 뛰어넘는 위대한 질문가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여기까지 음모론적 글쓰기를 위한 대강의 원칙 13가지를 제시했다. 이 원칙만 어느 정도 잘 적용한다면 처음 음모론을 제시하는 당신도 훌륭한 음모론자처럼 보일 수 있다. 오히려 이 원칙을 적용하면 당신은 이 글도 음모론이라고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13이라는 숫자에 주목해 음모론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프락치라고 할 수도 있다.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고, 당신이 이 글에 적용하는 음모론으로 탄생한 진실은 그 하나의 진실이 아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음모론에 나와 있는 패턴을 분석하고 간단히 알리는 것일 뿐이다.

그럼 이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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