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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May 20. 2019

나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겸손과 열등감의 사이에서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들’이다. 이 글에서 나는 평소에 여러분들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말할 것이다. “네가 뭔데?”라고 하면서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누군가는 공개적인 저격이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분명 이 글의 주제는 ‘여러분들’에 대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인간관계에 있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밝히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나는 당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당신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실물로 지금도 내 얼굴을 보러 오는 친구일 수도 있고, 오래전부터 SNS에서 교류한 친구일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내 브런치에 방문해서 글을 읽는 당신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어떤 자그마한 관계라도 맺게 된 당신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질문은 거창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나는 당신들이 좋은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또한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과 대인관계를 맺을 때 나는 항상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를 좋아한다. 남이 나에게 호의적이라고 가정하며, 나보다 항상 우월한 점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나 자신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남에게 선량한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어느 곳에서나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나의 인간관계에서의 태도에 대하여 꽤나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해악이 더 많다. 나는 이 태도에서 적당한 것을 모른다. 극단을 추구하고는 한다. 나는 한없이 열등한 존재이며, 상대는 한없이 우월하다. 나의 결점은 크게 보이고, 상대의 그것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런 열등감으로 남에게 맞추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 정도까지 심각한 상황이 되지는 않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간혹 내 생각이 만들어낸 차이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는 한다. 최근에는 그것을 주제로 아예 글 한 편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한 사람 정도는 반드시 “상문 씨는 이런이런 점이 좋은 사람 같아요”나 “상문 씨도 충분히 우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하게 기뻐하지만, 훗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남에게 칭찬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부터 들고는 한다. 끊임없는 열등감으로 동정과 칭찬을 구하는 악순환의 일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마저 드러낸다면 나의 불쌍한 점이 더욱 부각되어, 악순환이 심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속앓이만 한다. 남들은 그것을 보고 겸손함이 습관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체는 다르다. 최근에서야 치료를 받으면서 생각을 교정하고, 차차 적응하고 있는 편이다. 꽤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극단을 넘어 어느 중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나는 분명 어디까지는 왔다. 그것은 확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 내가 진실로 당신들을 더 좋아하고, 나의 기분도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웃고, 당신도 웃고 그러면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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