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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Jun 11. 2020

03. 카트랙은 빙글빙글 돌아가네

물건들을 나르며, 사람들을 만나며

2018년 7월 1일. 내가 이 물류창고에 처음 입성한 날. 나는 관리자에 의해 분류 파트에 배정되었다. 그 파트로 향하니 다소 연배가 있는 노동자 한 명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일은 매우 단순했다. QA(물건 전산 처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전산 처리가 끝낸 물건을 올려놓으면 카트랙에 그걸 실어서 분류 파트로 가져온 다음, 그 물건들을 항목에 맞게 분류하는 일. 이걸 8시간 동안 계속 반복하면 되었다.


카트랙을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카트랙은 직사각형 판에 4개의 바퀴가 달렸고, 좁은 선 양쪽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손잡이 구실을 하는 직사각형의 뚫려 있는 쇠가 꽂혀 있었다. 그 쇠 가운데 또 쇠로 한 줄이 있는데 여기에 다른 판을 끼우면 카트랙은 1단에서 2단짜리가 된다. 부피가 큰 물건들은 1단짜리 카트랙에, 작은 것들은 2단에 최대한 많이 모아 온다.


이제 카트랙을 끌고 QA 노동자들을 향해 출발! 하지만 쉬운 일임에도 처음에 꽤나 애를 먹었다. 어느 항목에 어느 물건이 들어가야 하는지 익숙해져야 했고, 작은 물건들을 모아서 가져오는 박스는 언제 가져와야 하는지 타이밍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단순한 작업이었기에, 시작한 지 2시간 정도 지나자 벌써 일이 손에 익을 정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창고를 빙글빙글 돌았다. 2단짜리 카트랙 위에 물건을 쌓아놓고 안에서 분류를 했다. 지루한 작업이었다. 더욱이 무더워지기 시작했으니, 땀은 억수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이거 안 할래요!’하고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갑은 얇았고, 마음은 빈곤했다. 더욱이 다른 택배 알바를 하던 친구에 따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난이도가 쉬운 축에 속한다는 말을 떠올리니 내가 하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는데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점이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다녀와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그만이었고, 물을 마시고 싶었으면 정수기로 가서 바로 마시면 되었다. 뉴스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는 물류창고 사례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운이 퍽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창고를 수없이 돌았다.


가끔 그렇게 쉬기는 했지만, 기계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었다. 사람들도 로봇 같이 보였다. 물류창고가 아니라 물류공장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QA가 물건을 바코드 기계로 찍고 처리한다. 그걸 나는 쌓아서 가져간다. 그것을 분류하면, 정리하는 사람은 파레트 위에서 물건들을 잘 쌓는다. 파레트가 일정 높이 이상 차버리면, 쟈키로 파레트를 빼서 랩으로 칭칭 감는다. 새 옷을 입은 파레트를 담당 노동자가 이를 가져다 놓으면 지게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그것을 빼서 어디론가 가져간다.


이런 식으로 물류창고가 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부분이 바뀌기는 했지만, ‘전산-수집-분류-정리’라는 과정은 변하지 않았다. 물건은 이런 식으로 창고를 빙빙 돈다. 물론 이걸 수집하는 나도 빙빙 돈다. 그런데 이 현장을 보면 ‘공장 같다’라는 느낌보다는, ‘어수선해 보인다’라는 말을 먼저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물류창고 노동자들을 보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보일만하다.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라인에 따라 움직이지만, QA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거 빼주세요’라고 하면 가서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 정리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파레트만 담당하지 않는다. 혼자서 여러 개를 담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정리하러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어느 물건들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건 나중에 빼자’라고 생각했던 파레트가 먼저 차버리는 경우는 흔하다. 이럴 때면 바삐 달려 쟈키를 가져와 파레트를 빼고 랩을 쳐야 한다. 전체적인 과정은 같지만, 공장처럼 항상 똑같은 규격의 무언가를 생산하는 작업은 아니다 보니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저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부산스럽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기계 부품처럼 일한다. 정해진 과정 내에서 일한다. 지루한 과정 속에서 부품처럼 일한다. 자연스럽게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가 머릿속에서 상영된다. 그것도 잠시,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진다. 나는 오로지 ‘물건을 쌓고 분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그렇게 내 카트랙은 금방 물건으로 채워지다 비워진다. 


나는 첫날부터 내가 끌던 카트랙에 ‘발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것이 굴러가는 소리가 내게는 ‘발발’로 들려서 ‘발발이’라고 지었다. 발발이와 나는 그렇게 서로 큰 유대감을 가지던 관계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가자 발발아’라고 작게 되뇌다, 끝날 때 ‘수고했어 발발아’라고 하는게 전부였다. 또한, 매번 같은 카트랙을 끄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제의 발발이와 오늘의 발발이는 항상 달랐다. 그래도 발발이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소중한 ‘동료’였다.


혼자서 카트랙을 끌고, 물건을 담고, 분류를 하는 과정에서 카트랙에 이름을 붙여주니 마치 2인조가 된 기분이었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함께한다는 기분이 지루함을 줄여주었다. 또한, 공장의 기계처럼 스스로가 변해간다는 기분도 완화해주기에 충분했다. 발발이와의 매일 8시간의 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 깊었다. 


지루함, 기계가 되어간다는 느낌, 외로움은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원래 나는 이 노동을 오래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잠시 거쳐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주기적으로 이곳에 나오게 되었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지’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기도 했고, 일용직이라 나오고 싶은 날에(물론 창고에서 받아준다는 전제가 있다) 나올 수 있다는 장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노동자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 보통 물류창고 일용직은 하루하다 영영 안 오는 경우도 있어 계약직 노동자들은 잘 정을 붙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주 오는 일용직은 달랐고, 나는 그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좀 더 다양한 일을 배우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봤자 물건을 수집하는 것에서 정리하고 랩을 치는 정도의 변화였지만, 여하튼 이전보다 더 ‘물류창고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많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렇다. 수고한다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분들이 많았다. 도통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나는 그 호의 속에서 점차 편안함을 느꼈다. 물류창고 노동 속에서 수 없이 땀을 흘리고, 숨을 거세게 몰아 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이유다. 


물론 짜증 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아니 발발이와 함께하던 상황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노동하는 상황으로 바뀌다 보니 마찰도 조금씩 생겼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그런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나름대로 잘 극복하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옆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노동자들과 더 많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성장했다. 폭식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지출도 급격히 줄었다. 상담을 다니게 되었고, 결국 정신과의 문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노동을 통해 점차 사람다워지는 기분을 받았다. 카트랙 바퀴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안, 내 죽은 감정들도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살고 있는 건 괜찮아’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나는 군대를 쫓기듯이 나오면서 우울증이 증상이 나아질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것이 나를 좀먹다가, 몇 년 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실제로 5년 안에 죽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정말 과거의 그릇된 생각으로 남고, 우울해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되었다. 우울의 극에서 행복의 극으로 향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거대한 변화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도 하나 있다. 발발이와 조금 거리가 멀어진 일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카트랙을 보면 ‘발발이'라고 하고 퍽 친근하게 여긴다. 다만, 같은 파트지만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접촉할 기회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 정도의 거리감이다. 지금도 발발이와의 그렇게 멀어진 것은 아쉽다. 그래도 아주 못 보는 사이는 아니니 지금으로서는 주기적으로 서로 얼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 정도의 옥에 티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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