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확정은 얼마나 고된가?
자정. 나는 근무 지원 문자 한 통을 쓴다.
‘내일 근무 가능합니다.’
전송 버튼을 누른다. 좋았어. 이제 좀 자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는데, 문자 한 통이 온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문자 좀 이렇게 빨리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아니, 그럼 평소에 빨리빨리 보내주던가.”
나는 푸념하면서 휴대폰을 놓는다.
한동안 이런 식의 줄달리기가 계속되었다. 물류창고를 다니던 초기, 나는 지원 문자를 선착순으로 처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티오가 적으면 잘릴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잘리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아직 폭식의 악순환으로 메워야 할 돈이 조금 급하던 차였다. 결코 잘리면 안 되었다. 가뜩이나 다른 알바 구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물류창고마저 못 나가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 걱정하자, 나온 지 꽤 되었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어느 노동자는 ‘나는 자정에 보내. 그럼 잘릴 일이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과연, 한 며칠간은 정말 잘릴 일도 없고 오전에 ‘근무 확정되었습니다.’라고 빨리 보내줬다. 하지만 이건 잠깐 동안만 효과를 냈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근무 확정 문자는 저녁이 되도록 오지 않아서 내 속을 타들어 가게 만들었다. 오전에 근무 확정 문자가 와야 내일 일 간다고 오늘 하루 일정도 거기에 맞출 텐데, 문자가 오후 늦게 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 6시에 오는 것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 오후 9시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나는 ‘아 내일 일은 안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친구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출근 확정 문자가 와서 다시 깨야만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일용직 노동자가 내게 ‘언제 오는지 계속 문자 독촉해봐. 그럼 좀 빨리 보내주던데?’ 나는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이 방법은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도 많이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 나는 ‘근무 시간에 맞춰 문자 지원을 하라’는 물류창고 측의 설명을 듣고, 근무가 시작될 시간인 오전 9시에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서는 오전에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었다. 평소라면 문자가 와야 할 시간대였지만, 역시 이번에도 오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근무 확정 언제 되나요?’라고 써서 보냈다.
30분이 지났다. 답장은 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근무 확정 언제 되나요?’라고 보낸다. 초조하게 또 기다려본다. 또 30분이 지났지만 역시나 묵묵부답이다. 이번에는 10분 단위로 보내보기로 결정한다. ‘좀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해야 근무를 받아준다.’라고 했던 동료 노동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독해져 보기로 한다. 10분 단위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그렇게 연속해서 문자를 보내자 드디어 답장이 왔다. 오후 6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아 이게 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은 또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다 보니 일 처리가 어려워진 센터에서 그런 행위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문자 폭탄은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물류창고 출근이 중요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일정이 확정되어야 유리하다. 안 되면 다른 일을 하던가, 쉬던가 결정할 수 있는데 ‘출근하세요’나 ‘죄송합니다. 출근 못하십니다.’도 아니고 아무 답도 없으면 초조함으로 식은땀만 가득 흐를 뿐이다. 이후에도 여전히 문자는 늦게 왔고, 더 이상 참지 못해서 다른 일을 알아보러 가는 노동자도 늘어났다.
이런 눈치게임은, 기다림은 몇 달 뒤에 끝나고야 말했다. 내 문자를 받아주던 지원 팀이 해체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류창고에서 일정 티오는 외부에 고용 티오를 주고 이들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는데, 센터에서 이 인원을 없애고 직영으로 직접 뽑는다고 방침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까지 그 팀에 있었다. 다른 노동자들이 ‘직영 팀으로 옮겨라, 잘 받아준다.’라고 했음에도 그랬다. 아무래도 익숙한 지원방식에서 벗어나는 게 당시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늦어지는 문자, 줄어드는 티오로 물류창고에 못 나가게 되는 날이 조금 생기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직영 팀으로 옮겨야 했다. 내가 팀을 옮긴 이후 얼마 안가 기존에 내 지원을 받아주던 팀은 사라졌다. 한동안 직영으로만 운영되는 듯하다, 잠시 다른 팀이 생기고 사라지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계속 직영팀에 문자 지원을 했고, 그곳은 문자를 일찍 보내주었다. 덕분에 몇 달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출근 지원 문자를 보내고 확정되는 순간 사이에 긴장감을 느낀다. ‘혹시나’하는 불안감도 있다. 심한 편은 아니지만, 불쾌감을 느낄 정도는 된다. 뉴스에서 말하는 고용불안을 이런 식으로 겪는다. 잘리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이 알바를 못하게 되면 돈은 어디서 버나. 그런 두려움들. 그건 아무리 출근 확정 문자를 빨리 보내 주더라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라.
나에게 문자 폭탄을 투하하라고 하거나, 자정에 보내라고 한 노동자들은 그것이 민폐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갈 시간, 혹은 다른 일정을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짤 수가 없었다. 그러니 비록 민폐처럼 보이더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렇게 보낸다고 말한다. 더 빨리 문자를 받아야 안심할 수 있는 삶. 그런 삶 속에서 동료 일용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두꺼워진 것이다.
지금이야 이런 일들을 하지 않는다. 기존 일용직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뽑기도 하고, 출근 확정도 이전에 비해서는 확연히 빨라졌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불안감처럼 사람들은 그 찰나가 힘들다. ‘언젠가는’에 힘을 주면서 이 물류창고를 벗어나겠다고 말하는 또래가 많지만, 그들도 나도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여기에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금도 문자 지원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쉬는 날이라 더 자고 싶어도 오전 9시에는 일단 일어나서 ‘내일 출근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보낸다. 곧 다시 잠드는 한이 있더라고 그렇게 한다. 그러다 문자가 와야 할 시간에는 초조해져 ‘왜 안 오지’ 조용히 생각하다, 몇 분 뒤에 오는 문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문자로 비로소 그들의 하루는 안정적으로 바뀐다. 덕분에 다음 날 일용직 노동자들은 물류창고에 나가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신바람 나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출근 확정 문자가 오지 않았다. 와야 할 시간대가 되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전화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심각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도 문자는 온다.
‘내일 출근 확정입니다. 무단결근하지 말아 주세요.’
다행이다. 나는 내일 물류창고에 나가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신바람이 난다. 하루의 불안이 그렇게 씻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