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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쓰야마에서 산책할래?

소심이 아줌마 둘이 떠난 첫 해외자유여행 도전기

by 함지연


25년 차 간호사인 친구가 퇴사를 앞두고 있다. 반년 정도 즐거운 백수로 지내다가 재취업을 할 예정이다. 친구는 직장에 다니느라 못했던 것들을 실컷 하고 싶다고 했다. 그중 한 가지가 여행을 많이 할 것이라는 계획.

그럼 우리 둘이서 해외로 자유여행을 떠나볼까.

농담처럼 툭 던진 나의 제안을 친구가 흔쾌히 받아들여 아줌마 둘이 떠나는 첫 자유여행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물론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유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나 동행이 주로 가족이기도 했고 일정대로 관광 가이드 깃발만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패키지였으며 이미 경험했던 자유여행은 젊고 용감한 딸의 주도하에 거의 패키지여행 수준으로 따라다닌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까 비행기 티켓팅은 물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숙소를 예약하고 이동 거리를 계산해서 맛집과 카페와 관광지를 넣은 일정표를 짜는 거 전부 다 따님의 몫. 길을 찾다가 잘못 들었을 때 다시 길을 찾는 것도 전부 따님의 몫.

어, 이 길이 아니네. 가만있어 보자. 어디부터 길을 잘못 들었지. 그래 바로 전 사거리였네. 엄마.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야.

태평하게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감탄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가게 안의 소품들을 기웃거리던 엄마는, 그제야 아, 그러니 하며 딸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는 식이다. (그동안 고생했던 딸들에게 사과를 전한다. 미안, 엄마들이 잘못했네, 잘못했어.)


온라인에서 친해져서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젠 제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된 친구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MBTI는 INFP, 그중에서도 소문자 i, 싸움에서는 언제나 지는 편,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꾹 참는 편, 다행스럽게도 각자에게는 야무진 딸이 있음. 시간적으로 겹치진 않았으나 내가 오래 살았던 집 근처의 병원에서 그녀는 근무했었고, 내 딸이 다닌 학교의 선배였으며 무엇보다 글쓰기와 그림을 사랑한다는 취향까지 비슷했다.

웃기고도 슬픈 건, 살림하고 돈 벌고 아이들 키우며 치열하게 사느라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나이를 실컷 잡순 낼모레 환갑이라는 것까지 같다.


더 웃기고 더 슬픈, 그야말로 웃픈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둘 다 남의 편이 없다. 있었는데 이제 없다. 누군가를 만나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질문, 호구조사를 묻고 답할 땐 분명 가족관계에 있던 그들이 우리 인생에서 사라졌다. 모르던 우리가 만나 친구가 되는 동안, 친구는 사별했고 나는 이혼(소송). 이런 걸 도플갱어라고 해야 하나. 뭘 이런 것까지 비슷하냐고요. 현실의 삶이 더 소설 같고 드라마 같다는 것을 살면서 알게 되기도 한다. 우연과 막장과 클리셰가 난무하는.


대화와 조율을 거듭한 뒤, 우리의 여행지는 일본의 소도시 마쓰야마로 정해졌다. 비교적 치안상태가 안전하고 가까운 비행거리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느끼는 편안함, 복잡한 대도시보다는 한적한 곳을 알아보다 발견한 곳이 마쓰야마.


심지어 우리는 여행을 위해 여행을 떠난 엉뚱함도 쿵짝이 맞았다.

목적지만 정한 상태에서 통화를 하다 만나서 세부적인 계획을 짜자는 말이 오가던 중, 그럼 우리 일박을 하며 논의하자. 좋다. 어디가 좋을까. 이왕 일박할 거면 서울 말고 다른 데 가자. 바다 가고 싶다. 오케이. 그럼 기차 타고 강릉 가자.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바다를 볼 수 있는 숙소가 좋겠다. 찬성.

그리하여 생애 최초의 비행기 티켓팅과 생애 최초의 해외 숙소 예약하기라는 역사적인 순간은 강릉 강문해변 앞 숙소에서 이루어졌다. 꽤나 성공적으로. 여행 23일 전이었다.


뒤돌아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낼모레 환갑 둘은 드디어 생애 최초의 비행기 티켓팅에 도전했다. 새로고침과 삭제와 취소와 다시 예약하기를 반복하면서, 든든한 딸 뒤를 열심히 따라다닌 것에 얼마간 학습이 되어서인지 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도 예약했다. 3박 4일 일정인데 둘째 날은 기차를 타고 시골에 갈 것이고 셋째 날은 도고온천에 가기로 했다.

가장 큰 미션을 완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듯 우리는 세부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 클리어, 숙소 클리어, 여행자보험 클리어, 환전 클리어, 그리고 해외 로밍도 해야 하고,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헤맬 텐데 어쩌나, 나도 못 믿겠고 친구도 못 믿겠다.

떠나기도 전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걱정 인형이 열 개쯤 필요한 나는 불안과 걱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스로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달래야 했다.


드디어 떠나기 5일 전.

이제 서둘러야 할 일은 미리 싸놓은 여행 가방에 빠진 것이 없나 다시 확인하고 여권 잘 챙기고 집에 떨궈놓은 식구들 먹으라고 카레도 한 솥 끓여야 한다.


혼자였다면 떠날 용기가 생겼을까. 조금씩 어설픈 둘이지만 함께여서 든든하다. 비록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 어쩌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느닷없이 닥친 일 앞에 머뭇거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헤매면 어때, 둘이 손 꼭 붙들고 다니다가 길을 잃으면 멈춰 서서 지도를 펼칠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길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할 것이다.


야호! 소심이 아줌마 둘이 마쓰야마로 산책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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