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 아줌마 둘이 떠난 첫 자유여행 3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중 한 가지는, 동행인에 대해서일 것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며 이해와 공감이 깊어지기도 하고 새삼스레 놀라워한다. 함께 하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통해 그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멀다.
친구와 나는 공통점이 많아 가까워졌다. 그리고 편한 사이가 된 이후에는 다른 점을 발견하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우리가 이런 것까지, 이런 생각까지 비슷하구나 신기해했다가 너와 나는 이렇게 가치관이 다르구나 깨닫는 시간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살았던 물리적인 거리만큼 먼 생각의 거리들.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여행을 하며 그가 실은 나와 크게 다른 사람임을 더욱 빠르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SNS에는 여행을 다녀온 후 손절했다거나 손절당했다는 후기가 종종 올라온다.
우리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나보다 친구가 더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 타인이나 다른 생명에 대한 태도가 의심 없이 따듯하다는 것. 반면에 나는 친구보다는 남의 눈치를 덜 보고 그래서 종종 충돌하고 타인이나 다른 생명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의심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관계에 있어서는 친구보다 내가 훨씬 더 까탈스러운 편이랄까. 그래서일까. 여행 전, 친구는 여행 다녀온 후, 자신이 손절당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말에 깔깔 웃긴 웃었는데. 친구의 말이 어쩐지 진지하게 들리는 것이다. 그거 농담 맞지? 친구야.
물론 내가 거듭된 전투로 유명한 쌈닭이 된 것은 인정. 그렇지만 아무나 막 물지 않아요.
마쓰야마에 있는 4일 동안, 나는 총 여섯 시간을 잤다. 그중, 하루는 아예 밤을 꼬박 새웠다. 낮게 코를 고는 친구 옆에서 나는 창밖으로 점점 밝아오는 새벽을 맞았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잠에서 깬 친구는 못 잔 내게 괜스레 미안해했다.
친구는 느끼지 못한 건물의 미세한 흔들림을 인지할 정도의 극한의 예민함을 지닌 나는 못 자고 못 쌌다.
나의 불면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다가 내 괄약근은 힘 조절에 실패하고 방귀를 크게 뀌었다. 졸지에 방귀를 트게 되어 민망해진 나는 3일째 화장실도 못 가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친구는 갑자기 이불 위로 퍽 엎어지더니 어깨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얘가 우는 건가 싶었는데, 우는 것이 아니라 숨이 넘어가게 웃는 중이었다. 친구에게는 일단 터진 웃음은 절대 참지 못하는 불치병이 있었고 나는 그날 그녀의 웃음병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마침내 웃음이 잦아들고 털어놓은 친구의 고백.
난 잘 먹고 잘 자고 심지어 잘 싸.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조금 비슷하고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예민의 끝판왕이었으며, 친구는 무던함의 끝판왕이었다. 친구는 힘든 일이 있었을 때, 그 곤경을 이겨낼 수 있던 것도 잠은 잘 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골똘하고 가지를 치고 새로운 문제와 걱정에 기어이 날을 새는 나와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계획과 완벽하게 다르게 보낸 2일 차 밤, 우리는 마주 앉아 3일째 일정을 의논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친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둘 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친구는 나보다 백 배쯤은 더 바다를 사랑한다는 것. 시모나다를 못 가게 된 아쉬움 때문에 차선책으로 갈 수 있는 바다를, 없다면 강이나 작은 개울이라도 가고 싶다며 검색을 거듭하는 친구를 보며 알았다. 잘 준비를 마치고 불을 끄기 전, 완성된 우리의 계획은 이러하다.
1. 마쓰야마 전망공원에 올라가서 멀리 보이는 바다 보기
2. 마쓰야마 성에 가서 한국인 무료 쿠폰으로 리프트 타기
3. 오카이도 상점가에서 어제 휴무라서 못 먹은 한식 먹기
4. 마쓰야마 낚시 공원에서 일몰 보기(친구가 찾은 바다)
그 밤이 바로 내가 꼬박 새운 바로 그 밤이다. 잘 자는 친구는 10시만 되면 졸려했는데, 내가 1시까지 취침 금지라고 경고했기에 졸음을 참던 그녀는 ‘자, 이제 1시가 넘었으니 자도 돼.’라고 수면을 허락받은 후 곧 잠들었다. 그리고 불면의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오만 짓과 오만 생각을 시작했다.
야심한 밤, 심각한 표정의 한 여자가 평온하게 잠든 다른 여자의 침대 주위를 서성인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파랗게 날이 개어올 무렵, 숙면한 친구가 기상했다. 잠도 덜 깬 그녀에게 대뜸 오늘의 일정을 조금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한밤중에 했던 오만 생각의 결과였다.
오전 시간은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그리고 낚시공원 말고 간이역인 바이신지 역에 가서 일몰 보기(마침 운행을 재개한 노선이 있었고, 원래 거기로 했던 시모나다 역과 반대편에 덜 알려지긴 했지만 바다를 볼 수 있는 역이 또 한 군데 있었다)
7시에 조식을 먹고 10시가 되기 전, 우리는 숙소 앞에서 헤어졌다. 친구는 마쓰야마 전망 공원으로 가서 바다를 볼 것이고 나는 전날, 전차 창밖으로 봤던 주택가를 산책할 것이다. 서로 선택한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다. 어느 길을 어떻게 걷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 혼자만의 여행을 즐긴 다음,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오카이도 상점가 입구에서 만났다. 낯선 번화가에서 수많은 사람 중, 저 멀리 있는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바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신기하고 다정한 일인가. 이윽고 서로의 거리가 손을 잡을 만큼 가까워질 때 얼마나 반갑고 정다운 일인가.
같이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다른 시간과 기억을 한 조각씩 품고 돌아왔다. 그것은 서로의 사진첩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친구의 사진첩 속에 있던 것은 산과 멀리 보이는 바다와 알록달록한 지붕들. 내 사진첩 속에는 지붕 아래 창문과 현관, 현관 앞의 화분들, 짱구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마당이 있는 아담한 이 층집.
그리고 마침내 마주했던 넓고 푸른 바다. 바이신지 역에 기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마자, ‘와아, 바다다! “를 자랑스러운 한국어로 크게 외치며 뛰어나간 두 명의 아줌마. 기관사가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것도 몰랐다. 중년의 여자 둘은 바다를 향해 질주하고 제복을 입은 청년이 그 뒤를 열심히 뛴다. 이건 어느 장르의 영화 클리셰일까. 범죄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는 더더욱 아니고 이건 그냥 코미디이다. 주인공인 내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니 말이다.
우리가 내린 곳은 작은 역사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간이역이었고, 역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다. 그래서 기차표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기관사에게 직접 내는 방식이었다. 일본에서 기차 처음 타 보는 우리는 정말 몰랐지. 기차 운전하다 말고 한국인 아줌마 잡으러 뛴 젊은이, 고멘네. 당황해서 가방에서 기차표를 찾느라 허둥지둥하는 아줌마들에게 신경질 안 부리고 웃으며 기다려줘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 함께 그 아름다움을 공감할 동행이 있어서 좋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순간 마음이 어떤 색으로 물들었을지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일몰을 보고 싶어 했고, 우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날은 춥고 역사는 닫혀 있고, 그 앞에 보기만 해도 목구멍이 얼 것 같은 음료 자판기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까이에 있는 유일한 실내공간은 일찍 영업을 종료했으며 추위를 피할 곳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차가워진 몸에 온기는 돌지 않았다. 얼른 따듯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차마 친구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오전, 길치인 친구를 혼자 가라며 매정하게 등 떠밀었던 것이 영 미안했다. 그래서 일몰을 포기하자는 말은 못 했다. 추위를 견디며 기다렸지만, 일몰은 결국 볼 수 없었다. 날은 흐렸고 구름 뒤로 숨은 해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으니까. 그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보았으니까.
여행의 동행과 모든 일정을 같이 해야 할까. 그게 당연한 여행 방식일까. 함께 가서 따로 노는 건 이상한 걸까. 당연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머물러 있을 때도 떠나 있을 때도 혼자이면서 함께이고 싶다. 함께 있다가 종종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 쉬고 싶다. 침묵하고 싶다. 그럴 때 나는 밖으로 나올 힘이 생긴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긴 사람이다. 내가 들어가 숨는 혼자만의 방은 너무 커서 어떤 사람은 내게 벽이 느껴진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내가 차갑다고 했다. 이해받지 못할 때 종종 마음을 다친다. 삶은, 여행은, 관계 때문에 항상 어렵다. 같이 걷고도 싶고 혼자 걷고도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나중에 친구는 각자 시간을 보내자는 내 말이 신경 쓰였다고 했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과 다른 나를 이해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혼자 보낸 그 시간이 친구에게 헛되었을까. 매정하게 돌아선 나를 야속해하며 보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길을 혼자 산책했던 시간이 친구에게도 자신의 방으로 숨는 순간이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소중했을 거라 믿는다. 물론 처음 혼자였던 길 위에서 조금 두려웠을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이기며 처음 가 보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여행을 떠날 것이고, 혼자 떠날 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동행이 있을 것이다. 혼자 여행이 필요한 시기도 오겠지만, 역시 누군가와 더불어 풍경을 보고 싶다. 좀 더 가까이에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행은 즐겁다.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여정에서 우리의 같음과 다름을 알아채고 그것을 인정하며 길 위를 함께 걷는 순간을 즐길 것이다. 노래를 부르듯 춤을 추듯 낯선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며 그 순간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이렇듯 가깝고 또 먼 사이임을 알아채는 것, 그 경험을 통해 관계가 성숙해지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