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좋아하시나요
내가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은 곳은 자치구에서 운영되는 문화센터입니다. 한 학기 수강료가 4만 원, 저렴한 수강료에 비해 강의는 놀라울 만큼 유익했지요.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들에게 배우는 소설 수업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20대 초반, 내 딸 또래의 스승님께 소설을 배웠지요. 그때 쓴 소설로 등단을 하게 되었으니 나의 인생을 바꿔준 수업이기도 합니다.
수강생 또한 다양해서 대학원 수업을 하는 교수님도 있었고, 대학에 막 입학한 20대 초반의 대학생, 소설 창작을 공부하러 경기도에서 왔던 분도 있었어요. 출산 알주일 전까지 수업에 참여한 후,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 돌아온 젊은 엄마 미아씨와는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서로의 소설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었거든요. 그녀는 합평 후, 내 소설 중 특히 좋았던 부분을 그녀의 남편에게 낭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문화센터의 다른 강좌도 그렇듯 15명 정원인 강좌는 마지막 수업이 가까워지면 어느새 5명 내외로 줄어들었습니다. 한 학기에 한 편의 습작 소설을 완성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고 합평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종강날까지 함께 했던 소수의 인원들은 수업을 계속하며 가까워졌습니다. 오후 9시가 훌쩍 넘어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수강생들과 카페에 앉아 오로지 소설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지요. 우리는 서로의 소설에 대해 깊은 조언을 해주거나 관심을 갖고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시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군에
소설가도 있었으니 돈도 안 되는 소설 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나는 정말 소설을 사랑하는가 봅니다.
매주 소설을 배우러 가던 월요일 저녁을 기다렸는데, 결국 폐강되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수업에서 내가 좋아했던 소설을 쓰던 이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는지, 그의 새로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해요. 어디선가 문학상의 당선작 발표가 나오면 아는 이름이 있나 찾아보기도 합니다.
출판사도 작가도 서점도 힘든 시기입니다. 1인 출판사를 하는 지인은 출판업이 단군이래 가장 어렵다고 하네요. 더군다나 독자는 점점 줄고, 긴 글을 읽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독자는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등단 후, 출판사에 투고를 몇 번 했으나 좌절을 겪었고 복잡한 개인사가 겹쳐 나의 이야기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읽을 때 행복하고, 소설을 쓸 때 또 행복해집니다. 긴 시간 몰입하는 순간은 아마 소설을 쓰고 소설 속 인물들과 감정을 나눌 때입니다. 그들을 빛 속으로 꺼내주고 싶습니다.
소설을 배우던 행복했던 그때, 썼던 소설들입니다.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며 더 벼르고 다듬어서 종이책으로 만나기를 꿈꿔봅니다.
나무에게 덜 미안한 책을 만들기 위해 거듭거듭 그 작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