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나는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워있다.
머리는 책상 아래 처박혀 있고, 발은 원목 서랍장에 닿아 있다. 입을 벌린 다섯 개의 서랍은 점점 앞으로 쏟아지는 중이어서 조만간 발가락을 찧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전에 책상상판이 주저앉아 코뼈가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상 밑은 먼지가 뿌옇게 쌓였고, 숨 쉴 때마다 콧구멍으로 먼지 알갱이가 들어와 간질거린다. 이 책상으로 말할 거 같으면 희수가 초등학교 다닐 때 쓰던 것인데 구입한 지 20년은 훌쩍 넘는 사물이다. 서랍장 역시 그러하다. 2평이 채 안 되는 방에 가장 최근의 것은 나.
희수가 나간다. 희수의 방문이 열렸다 닫히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힌다. 그제야 나는 기지개를 켠다. 팔을 뻗으며 흔들리는 책상다리를 건드렸다. 그 바람에 책상 위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복부에 떨어진 후 구른다. 시계를 찾아 확인하지 않아도 오후 8시 30분일 것이다. 언제나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이상 여유 있게 도착하는 희수는 8시 50분이면 24시간 영업하는 감자탕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것이다.
식당은 도보로 20분 걸린다. 마을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이지만 차비를 아낀다며 희수는 걸어간다. 가끔은 강풍이나 폭우에 우산살이 부러졌다거나 신발이 다 젖었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러면 고장 나서 못 쓰게 된 우산이 차비보다 비싸지 않냐고 내가 묻는데 희수는 대꾸도 없다. 내 질문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데, 하도 당해서 이젠 기분 나쁘지도 않다.
4살 차이는 궁합을 볼 필요도 없다고 누나에게 중매를 설 때 큰고모는 말했었다. 그 말이 일부 맞기는 한지 누나와 매형은 십 년째 기어이 피를 볼 때까지 싸우기는 하지만 이혼하지 않고 산다.
나보다 4살 많은 희수는 처음부터 나를 동생 다루듯 했다. 내게 함부로 하고 막 대하고 수시로 무시했지만 그런 희수여도(아니지, 그런 희수여서) 좋았다. 그게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희수는 열네 살부터 연애를 멈춘 일이 없다고 했다. 사귀기 시작한 첫날 키스를 하거나, 아니면 키스를 우선 한 후에 사귀었으며 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의 연애사를 자랑했다.
상대는 모두 연하였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희수의 주장일 뿐이고 확인할 길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긴 해도 그녀의 적나라한 연애사 속 등장인물이 마치 나인 듯 몇 번을 들어도 흥미롭다. 희수의 전 남자친구나 전전남자친구나 전전전전 남자친구들을 절대로 질투하지 않는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나는 희수가 처음 사귄, 또는 두 번째나 다섯 번째 남자 친구와의 일화를 들려달라고 조른다. 호흡할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녀의 배에 기대 귀에서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와 키득거릴 때마다 떨리는 몸의 진동을 느끼던 나른한 날들.
희수는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꼬박 12시간의 야간 근무를 마친 뒤 9시 20분쯤 귀가한다. 가끔 우유나 생리대 같은 걸 사느라 마트에 들르기도 하는데 그러면 아침 10시가 조금 넘는다. 정오가 지난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그날은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자주 있다. 희수가 안 들어온 날을 달력에 표시하다 이걸 세서 뭐 하나 귀찮기도 하고 쪼잔해 보이기도 해서 관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