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2

두번째 이야기

by 함지연

처음 희수를 만나 데이트를 시작할 무렵, 나는 한 번도 그녀를 기다려본 일이 없다. 약속장소엔 항상 희수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출발하면 차가 막히거나 배차시간이 길어지거나 휴대폰을 두고 와서 되돌아가거나 했다. 차가 막히지도 않고 휴대폰을 두고 와서 집으로 되돌아갈 일이 없어 내가 기다리겠구나 싶은 날, 먼저 온 희수는 너무 일찍 와버렸다며 중간쯤 펼쳐져 있던 책을 덮었다.


정작 함께 살면서는 희수가 책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성적이 하위권이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그녀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희수에게 공부머리가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챈 그녀의 엄마는 대학 대신 미용학원으로 진로를 정해주었다. 딱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기에 엄마의 의견에 불만은 없었지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모두 대학에 다니며 서먹해지다가 차츰 멀어진 이후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친구가 백팩에서 두꺼운 전공서적을 꺼내는 모습이 그렇게 근사해 보이더라고 했다. 그래서 철이 바뀔 때마다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책 한 권씩 구입한다고 했다.


나랑 처음 만날 때 진짜 대학생처럼 보였어? 유식해 보였어?

사실 대학생이라기엔 그때도 나이가 이미 많았고 냉정하게 말하면 동안도 아니어서 나이보다 몇 살쯤 위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응 하고 대답했다. 아니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희수는 내 등이나 옆구리를 주먹으로 가격할 건데 작고 살이 없는 그녀의 손은 아주 맵다.

한 번은 옷을 벗는데 놀랍게도 근육질이어서 농담으로 역도를 했느냐 물었다가(하마터면 그날 은혜를 받지 못할 뻔했다) 여러 대 더 맞기도 했다. 웃으며 때리는데 무지하게 아팠다. 통증이 오래 지속됐고 간혹 멍을 남겼다.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다(당연히 장난을 치던 상황이다, 믿어주기를) 하필 눈을 맞은 적이 있는데, 다음날 눈두덩이 부었다. 멍이 든 채 백화점에 출근했더니 보는 사람마다 눈이 왜 그러느냐 물었다. 사이가 벌어진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다고 둘러댔지만 아무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누구한테 맞은 거 같은데?

옆 매장 직원 C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는데 다른 사람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멍이 옅어질 때까지 나는 매 맞는 불쌍한 남자 캐릭터로 지내야 했다.


보이는 곳에 표 나게 때린 것은 그때 한번뿐이었고, 미워서 때리는 것보다는 장난으로 때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쪽팔리긴 했지만 맞은 건 사실이어서 뭐라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더니 희수는 미안해하며 앞으로 얼굴은 건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멍든 눈두덩을 만질 때 분명 그녀의 두 눈은 촉촉하게 젖었고 진심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