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누워있던 몸을 옆으로 튼다. 여전히 내 머리통은 책상 아래 있으며 이제 내 발가락은 두루마리 휴지가 굴러간 방문 문지방에 닿아 있다. 불을 켜지 않은 반지하 방에 누워 있으면 책상 아래로 더 깊은 어둠이 내려앉는다.
종일 방 안에 같은 자세로 누워있기는 했지만, 잠을 잔 것은 아니다. 희수가 아침에 들어와 양치질을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코를 골며 자다가 일어나 다시 양치질을 하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돌아다니며 전등을 끄고, 집을 나서는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침침한 방에 누워 한동안 뒤척이다가 더는 오줌을 참을 수 없어서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안은 희수가 샤워를 마친 직후여서 타일과 세면대와 변기에 물이 튀어있고, 후끈한 습기와 함께 샴푸 냄새가 남아있다. 엘라스틴이다. 희수는 케라시스와 엘라스틴을 번갈아 쓰는데 그래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그 두 개의 냄새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오줌을 눈 뒤, 마른 수건으로 거울과 세면대와 문짝의 물기를 닦는다. 매일 열과 성을 다해 거울에 튄 물방울도 남김없이 싹 닦는다. 마지막으로 수건에 린스를 콩알만큼 묻혀 거울을 문지른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꼴이 한심해 보이겠지만 이 정도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것을 희수가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거실에 있는 TV가 파묻혀 버릴 정도로 쌓이고 넘쳐나는 짐은 주방까지 가득하다. 가스레인지와 개수대 위까지 물건들이 쌓이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포기했다. 당연히 설거지할 일도 없었으며 청소할 엄두도 안 났다. 희수 엄마가 고물상에 팔기 위해 모아놓은 우유팩이나 헌 책, 이면지 같은 것이 주방 한구석에 여전히 있는데, 우리는 다 먹은 우유팩이나 피자 박스를 거기 던졌다. 납작해진 종이들이 무덤처럼 쌓였다.
한 번은 이걸 내가 정리해서 버리면 어떨까 물었더니 희수는 그 자리에 그냥 놔두라고 경고했다. 어느 하나라도 허락 없이 건드리거나 버리면 그땐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희수는 한번 한다고 하면 하는 여자라서 이 경우 분명히 나를 죽일 건데 실평수 14평 공간에서 내 시체를 찾는 데만 최소 3박 4일이 걸릴 것이다. 하긴 시체가 되기 전에 희수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내쫓길 확률이 더 높겠지. 맞는 건 참겠는데 쫓겨나는 건 견딜 수 없다.
욕실을 치우는 건 내가 하는 유일한 집안일이다. 희수가 허락한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희수 엄마가 모아 놓은 유통기한이 3년 전이라고 찍힌 우유팩 하나 못 건드리게 하지만 욕실 청소만은 묵인한다. 덕분에 욕실은 14평 반지하 빌라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비어 있는 공간이다.
엘라스틴 냄새를 맡으며 물기를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닦아도 갈라진 문틈으로 물이 스며들고 아래쪽부터 서서히 썩어간다. 나뭇결무늬가 있는 시트지를 사다 붙이기도 했지만, 욕실 문은 계속계속 썩어갔다. 문틀에서 점점 어긋나고 있는 문은 여닫을 때마다 우는 소리를 크게 내지만 문은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녹슨 경첩이 헐거워 위태롭지만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녹슬고 바스러지고 빛이 바래고 있는 그곳에서 함께 헐거워지며 함께 무너질 것이다. 희수는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다. 버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실직 전, 마지막으로 다닌 직장은 백화점이다. 나는 마을버스를 탄 후 전철을 한번 환승하며 한 시간 반 걸리는 백화점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신발을 팔았다. 주말에는 30분 연장 근무를 했고, 세일 행사 기간에는 12시가 되어서야 끝나기도 했다.
그리고 희수는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홀 서빙을 한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주방 일을 하면 지금보다는 대우도 더 받고 월급도 훨씬 높지만 가방 안에 책을 넣어 다니는 습관이 있는 여자치고는 지구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서(물론 이 말을 하면 또 때릴 거라서 생각만 했다) 필기시험에서 두 번 불합격한 후 아예 포기해 버렸다.
나는 스물한 살부터 줄곧 판매직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마트 신선식품 코너에서 청과와 생선을 팔았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스포츠의류 아웃렛 매장과 대형마트로 옮겨갔다. 한 군데 오래 있지는 않았고 중간에 쉬는 기간도 많아 돈은 모으지 못했다. 일 년 일하고 육 개월 쉬고 나면 노는 동안 생활비로 다 나갔다.
오래 일을 하고 싶어도 마트는 잘도 망하고 사장은 툭하면 도망가고 월급도 수시로 떼어 먹혔다. 안 쓰고 안 먹고 돈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해서 좀 더 조건이 괜찮은 방으로 이사해야겠다 결심하고 나면 내가 다치거나 아버지가 다쳤다. 우선 빚을 지고 그 빚(과 이자)을 갚느라 안 쓰고 안 먹는 생활은 계속됐다.
돈 많이 드는 취미도 없고 사람을 만나 친교를 즐기지도 않는다. 돈 쓰는 일이라고는 월세와, 저녁 식사로 배달시켜 먹는 피자나 치킨 뿐이며 방에 틀어박혀 휴대폰 게임을 즐기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오락이다. 그런데도 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