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7

by 함지연

처음 만났던 날, 희수 엄마는 국수를 먹고 가라고 내게 말했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바래다준 그녀의 집 앞에서 포옹하고 있을 때였다. 먼저 덮친 건 물론 희수다. 열일곱 살부터 연애를 한 그녀는 키스를 잘했다. 그때 현관문이 와락 열렸다. 왜소하고 늙은 여자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처음엔 실내의 불빛을 등지고 있어 얼핏 체구만 보고는 초등학생인가 싶었다. 나이 마흔 중반에 희수를 낳았다는 그녀는 나이보다도 훨씬 더 쪼그라들고 늙어 보였다. 여자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끌어안은 우리를 흘낏 쳐다보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 쓰레기봉투를 휙 집어던지고 돌아왔다.


들어가자.


희수를 흘겨보며 그렇게 말하더니 국수를 삶아줄 테니 먹고 가라고 했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듯 쭈뼛거리는 나를 희수가 집 안으로 떠밀었다.

희수가 그녀의 엄마와 함께 사는 집은 시 외곽의 오래된 연립이다. 3층 건물인데 반지하의 두 세대 중 한 집이 희수의 집이다. 작은 방과 더 작은 방과 주방 겸 거실이 딸린 집이다.

크고 작은 냄비 두 개에 물을 끓이느라 실내는 습기 차고 눅눅했다. 지나온 세월이 느껴지는 온갖 잡동사니와 살림들이 들어찬 공간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7단 서랍장 위에 3단 서랍장을 더 얹고 그 위에 크고 작은 박스들을 천장까지 쌓았다. 박스와 박스 사이의 틈에는 둘둘만 보자기나 비닐봉지, 효자손 같은 자잘한 물건이 빈틈없이 끼워져 있다. 희수의 나이쯤은 거뜬히 넘긴 것 같은 사물들이 빼곡했고 한쪽 벽에는 액자가 또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거기 일곱 살의 희수, 열일곱 살의 희수, 스물몇 살 무렵의 희수가 있었다. 사생대회에 나가 가작을 받은 상장도 하나 있었다.


이사 다닐 때 번거로워서 최소한의 짐만 가진 채 살던 때였다. 월세 5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의 방을 옮겨가며 살 때인데, 다섯 평짜리 방 한 칸이 휑해 보일 정도였다. 보증금이 없어 고시원에 살던 때 1평 남짓 협소한 공간에서 간소하게 살던 것이 그대로 습관이 되었다. 이삿짐 트럭을 부를 일도 없이 택시 뒷좌석이면 충분했고 이사할 집이 가까우면 아예 두어 차례 오가면 되었다.

뭐를 끓여 먹을 여건이 되면 그렇게 했지만, 굳이 주방 도구는 장만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오는 길에 피자나 치킨을 포장해 와서 먹고 조금 남겨 아침을 해결했다. 고시원에서는 공동 주방이 있어 밥과 김치는 무상 제공되고 가스레인지로 끓이거나 데워먹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사람이 오래 살 만한 공간이 아니어서 몇 달 버티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 습관이 되어 최소한의 짐만 소유하고 살았다. 그것조차 어떤 기억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 말하자면 버리는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는 사물들이다. 추억도 없고 상처도 없기에 아깝지 않고 무의미하며 값어치 없는 사물들이다.

스무 살에 독립한 이후 열세 번의 이사를 했는데, 세 번째 집에서 사고가 있었다. 이른 더위로 창문을 열고 지내던 늦봄이었다. 연 창으로 자꾸만 파리가 들어왔다. 자꾸 얼굴에 앉아 잠을 훼방 놓아서 왜 이리 파리가 많지? 하고 투덜댔지만 아침이면 출근하느라 까먹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방 바로 위층에서 여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실으러 오는 차는 사이렌을 울리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실으러 오는 차는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다. 소리 내지 않고 집 앞에 스르르 멈춘 차에 흰 천에 덮인 그녀가 실려 갔다.

당연히 성별조차 모르던 사이였는데, 특수청소업체에서 온 사람들이 그 집을 청소할 때 트럭에 싣는 사물들을 보고 여자일 거라고 추측했다. 레이스나 무늬가 있는 옷들, 높고 낮은 구두와 크고 작은 가방들, 100리터 종량제 봉투에도 들어가지 않을 커다란 곰 인형, 바람 빠진 분홍색 짐볼, 바싹 마른 꽃다발 몇 개. 5평짜리 방안을 가득 채웠을 이제는 죽은 여자의 사물들이 함부로 내던져지는 것을 보며 혹시 내가 죽은 뒤 저렇듯 거칠게 버려질 사물 따위는 애초에 갖지 말자고 작정했다.

나는 선풍기를 사지 않았다. 나는 밥상을 사지 않았고 겨울 점퍼를 한 벌 이상 사지 않았다. 나는 방석을, 거울을, 주전자를 사지 않았다. 나는 스무 살 이후 줄곧 혼잣말이나 재채기 소리가 울리는 방에서 혼자 살았다. 처음엔 희수의 집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중에는 내 집이 이상한 거였구나, 알아챘다.

희수의 집에서 온갖 소리들은 서랍장 위에, 또는 장판에 깔려 있는 담요나 혹은 먼지가 진득하게 앉은 전등갓 위에 스며들 뿐, 전혀 울리지 않았다. 국수 삶는 더운 김과 두런거리는 사소한 말들이 녹는 눈처럼 내렸다.

그러다 가끔 오래된 사물들이 소리를 낸다. 삐걱거리는 소리. 주저앉거나 비틀어지고 어긋나는 소리. 나른하고 소란스러운 희수의 집에서 나도 저 소리들처럼 가라앉고 싶었고 눕고 싶었고 잠들고 싶었다.


다 되었다. 희수야, 상 펴라.

좀 어수선하지? 우리 엄마가 잘 버리지를 못해서.


펼쳐져 있던 이불과 잡동사니를 한쪽으로 쓱 밀어 상 펼 자리를 마련하며 희수는 변명하듯 말했다.

내 어머니도 등을 돌린 채 부엌에서 된장을 풀거나 호박을 썰거나 국수를 삶았을 건데, 그러면 콩이나 감자를 조리는 간장 냄새나 채소 삶는 냄새도 맡았을 텐데 어쩐지 모든 것이 아득하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의 얼굴은 뿌옇거나 뭉개져 있다. 누나는 사진을 몇 장 가지고 있을 테지만 준다고도 하지 않았고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너, 지금 보니 엄마를 닮았다.


누나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그렇게 말한 일이 있다.


웃을 때 한쪽에만 볼우물 생기는 거 엄마랑 똑같아.


나보다 8살 연상인 누나에게는 어머니의 목소리나 모습이 선명할 것이다. 더 많이 그 품속에 안겨 서로의 체취를 맡았고, 더 많은 밥상을 마주했을 테니까. 나는 기억 못 하는 어머니에 대한 누나의 회상을 듣는 일은 어쩐지 억울하다. 부아가 나서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싶었으나 조카가 옆에 있어 참았다. 장래 희망이 고양이라는 그 애는 제 엄마를 빼닮았다.

이따금 거울 속 내 모습 위에 어머니의 얼굴을 겹쳐보기도 한다. 누나에게 어머니 사진을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애틋하거나 미련이 남는 어떤 사물도 나는 갖지 않기로 했으니까. 어머니의 얼굴이 아득할 때, 욕실에서 씻다 말고 뿌연 거울 너머 얼굴을 골똘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