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와 키스를 하다 걸려 얼떨결에 희수의 집으로 따라 들어갔던 그날, 희수와 희수의 늙은 엄마, 그리고 나는 TV 바로 앞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었다. 희수와 희수의 엄마 그릇에 담긴 국수보다 내 쪽으로 내민 그릇의 양이 훨씬 많았다. TV에서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면발을 삼키다 말고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놀라웠다. 밥상에서 누군가와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경험은 내게 낯설고 생소했다. 누가 내 맞은편에서 소리 나게 국물을 들이켜고 트림을 하는데 그 소리가 싫지 않고 다정했다.
부천에 사는 누나를 이따금 만나기도 하지만 매형이 대놓고 싫은 티를 내서 집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식당 밥을 사 먹고 근처를 잠깐 걷다 헤어졌다. 그마저도 설날과 추석 무렵 일 년에 딱 두 번이다.
지난 추석과 이번 설에는 만나지 않았다. 아니다. 잠깐 착각했다. 잘 생각해 보니, 저번 설에도 만나지 않았네.
내가 소면을 다 건져 먹기도 전에 희수의 엄마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서 채반에 남은 국수를 맨손으로 집어서 내 그릇에 담아주었다. 채반에 눌어붙은 한 가닥까지 야무지게 북북 훑어서 내 그릇에 넣고 뜨겁게 다시 끓인 국물을 더 부었다. 반찬으로 내온 단무지 무침을 내 그릇에 자꾸만 올려주었다.
나중에 그 일을 특별하게 추억하자 정작 희수는 별로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그거? 우리 엄마 버릇이잖아. 아무나 만나기만 하면 뭘 자꾸 먹여. 자꾸만 먹으래. 자꾸만 더 먹으래. 택배 아저씨를 세워놓고 기어이 미숫가루라도 한 잔 타 줄 테니 마시고 가라고 잡아. 괜찮다고 사양해도 바쁜 사람을 기어이 먹여 보내. 노인네가 그러니 어쩌지도 못하고 얼마나 곤란하겠어.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안 들어. 하다못해 집 앞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한테까지 참치 캔이라도 하나 까서 먹였다? 목 메이지 말라고 접시에 깨끗한 물까지 같이 줬다? 이것들이 영악해서 죄다 우리 집 창문 앞에서만 울었어.
처음 본 날, 희수의 엄마에게서 받은 대접이 마음을 덥혀 주었는데, 내가 지나가는 행인 1이나 행인 2 또는 집 앞을 서성이는 길고양이와 같은 처지였다고 생각하니 서운해서 그때 멸치육수로 정성껏 끓여주신 국수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 최고로 맛있었다고 반박하자 희수는 담담하게 툭 내뱉는 것이었다.
그거 다시다 국물인데 몰랐구나? 밥숟갈로 듬뿍 떠서 넣고 끓이면 멸치 맛이 나거든. 우리 엄마가 좀 많이 넣기는 해. 소고기 맛, 멸치 맛, 해물 맛. 맛도 다양해. 역시 다시다가 최고야.
말은 그렇게 건조하게 했으나. 엄마에 대한 희수의 마음이 애틋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그건 그냥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희수의 엄마를 잃었다.
교통사고였는데 운전자가 만취 상태였다. 희수의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나는 엉엉 울었다. 운동화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뛰다가 끈을 밟아서 앞으로 고꾸라져 얼굴과 손바닥을 쓸리기도 했다. 조문객도 없는(아버지와 누나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동거하는 여자 친구 엄마 초상에 부르는 것도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썰렁한 장례식장을 지키면서도 계속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야, 내 엄마가 죽었는데 왜 네가 더 서럽게 우냐.
같이 소리 내어 울던 희수는 울음을 멈추고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 나는 영정사진 속 희수 엄마를 보면서도 울고 식은 육개장에 식은 밥을 말면서도 울었다. 손이 매운 희수는 그런 나를 그만하라며 시끄럽다며 머리통이나 등짝을 때리기도 했는데 얘가 엄마를 잃은 상심이 얼마나 크면 이다지도 아프게 나를 때리나 싶어 얻어맞으며 울고 졸지에 고아가 돼버린 희수가 불쌍해서 또 울었다.
나 또한 어머니를 잃었으나 아버지와 누나가 있지 않나. 물론 그 아버지를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하니 돈 좀 꿔달라고 해서(꿔간 돈을 갚은 적은 한 번도 없다) 500 만원 보낸 이후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상태이긴 한데, 그러면 아버지는 도대체 지금 어디 있나 없나 문득 내 아버지가 걱정되어 조금 더 울었다.
희수의 엄마는 이제 없다. 희수의 집에는 희수와 나 둘뿐이다.
우리는 자주 희수의 엄마와 더불어 지낸 순간을 회상했다. 주로 그녀가 우리에게 해주었던 뜨겁거나 차거나 매운 것들에 관해서였다. 배고픈 채로 거실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어느 낮, 창문 밖에서 끓는 된장 국물 냄새가 훅 들어왔다. 우리는 배가 고팠는데,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고 가스 불 위에 뭐를 끓이거나 할 의욕은 없던 참이었다. 희수가 소리쳤다.
울 엄마가 끓여준 수제비 먹고 싶다.
나 또한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난 고추장 풀어서 얼큰하게 끓인 게 더 맛있더라.
그렇지, 거기에 청양고추까지 쫑쫑 썰어 넣어서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지.
보글보글 국물이 끓는 모습을 떠올리자 뱃속이 뜨끈해지고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근데 우리 엄마가 만든 열무자박이 진짜 맛있지?
인정. 정말 최고야. 김치 장사해 볼까도 말했었잖아.
보리밥 해서 막 담근 열무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좋겠다.
보리밥을 두 그릇씩 먹고 우리 셋이 하루 종일 계속 방귀 뀌던 거 생각나?
맞아, 무슨 돌림노래처럼 네가 뿡, 내가 뿡, 그다음 엄마가 뿡뿡.
냄새난다고 참으라고 막 소리를 질렀지. 그런데 그렇게 소리친 사람이 어쨌더라? 말 끝나기 무섭게 뿡뿡.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낄낄대다가 뿡뿡뿡뿡뿡.
그날은 모처럼 셋 다 쉬는 날이었고, 다음날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데, 물건을 가지러 창고로 뛸 때나 고객에게 신을 신겨주기 위해 쭈그려 앉을 때 괄약근을 아무리 조여도 무력하게 방귀가 새어 나와 곤란했다.
희수는 미친년처럼 웃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미친놈처럼 웃었다. 나중에는 배가 아파 배를 움켜잡고 이리저리 방바닥을 굴렀다. 하도 웃어서 배가 더 고파졌다. 희수의 엄마가 그리운 것인지 그녀가 우리를 먹인 음식들이 그리운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허기 진 우리는 끝도 없이 먹고 마신 모든 것들을 그리워했다.
손이 매우 컸던 희수의 엄마는 먹어줄 식구가 하나 더 늘자, 만든 음식이 푹푹 줄어드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었다. 건물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면 고단할 만도 한데, 면을 삶고, 부침개를 부치고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마늘 두 접을 다 까서 끓인 간장을 붓고 고추와 양파, 오이를 절였다. 희수의 엄마가 죽고, 그녀가 남긴 고추장아찌와 오이장아찌를 야금야금 다 헐어 먹었다. 희수와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양파장아찌까지 다 먹었다. 희수의 엄마는 죽어서도 한동안 희수와 나를 먹였다.
그리고
애도의 시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