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님 집과 가까운 아파트에 살아요. 내가 사는 101동이 32평이고 102동과 103동이 24평이에요. 시부모가 신혼집으로 32평 아파트를 빚 없이 사주셨다고 하자 다들 시집 잘 갔다고 부러워했죠. 그때 부러워했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다 연락이 끊겼고요, 시부모가 집 사줬다고 그 자랑을 친정어머니는 아직까지도 하긴 해요. 미용실이나 남대문시장 같은 데서요. 또는 전철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노인들에게요.
그러는 동안, 나는 여전히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체리색 몰딩과 소라색 변기와 뻐꾸기가 나오지 않는 뻐꾸기시계가 있는 그 집이요. 벽이 허전하다며 아버님이 직접 골라 걸어놓은 가로 156cm, 세로 91cm 산수화가 이십 년째 걸려 있는 그 집이요.
친구가 놀러 와서 간짜장과 볶음밥을 시켜 먹던 참이었어요. 막 젓가락을 들려던 순간, 인터폰이 울렸어요. 아버님이 웬 남자와 액자를 앞뒤로 나눠 들고 불쑥 찾아오셨죠. 물론 오겠다는 사전 연락도 없었고 오로지 아버님 취향인 그림을 선물하겠다는 말도 당연히 없었지요. 아버님이 가져온 못 두 개와 망치로 벽에 구멍을 뚫어 액자를 걸고 가신 후 눈치 보며 쩔쩔매던 나를 향해 친구가 삐죽거렸어요.
나 같으면 돈 안 받고 벌써 이사 갔겠다.
그때 시가에서 고작 이백만 원 보태줘서 방 한 칸짜리 전세 살던 친구였거든요. 그년하고는 그 이후 바로 절교했어요.
가깝고 먼 산봉우리가 몇 개 솟았고 그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흐르죠. 그 풍경 속에 돛을 달지 않은 배에 선 채로 노를 젓는 한 남자가 있어요.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그를 노려보다가 증오하다가 마치 산 사람에게 하듯 욕을 내뱉죠. 어머님은 모르시지만 나는 욕을 엄청 잘합니다. 욕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컸거든요. 아무튼 그림 속의 그 남자에게 어쩔 때는 반말로 어쩔 때는 존댓말로 욕을 합니다. 망치로 액자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정말 아주 가끔이에요.
어떤 날은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오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면 아버님이 딱 서 계시기도 했고 외출에서 돌아오던 어떤 날은 마침 문을 열고 나오시던 어머님과 마주쳐서 화들짝 놀라기도 해요. 또 다른 어떤 날은 빈 집에 다녀가신 것도 모르죠.
그러다가 저녁밥을 하러 주방에 들어가서 흠칫하는 거예요. 나는 주방세제를 항상 개수대 왼편에 놓고 사용하거든요.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난 설거지를 할 때 오른손에 수세미를 들고 왼손으로 세제를 꾹 눌러 짜요. 그런데 그게 오른편에 있는 거예요. 지겨워서 무슨 일로 다녀가셨느냐 묻지도 않았어요. 세제 통을 원래 있던 왼편으로 도로 옮겨놓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꽃잎이 신발 밑창에 으깨지던 그때요, 3년 전 4월 말에요. 한 여자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어요.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수군거리고 있었어요. 심란한 얼굴의 이들 중 아래층 아주머니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이리 오라 손짓했어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102동에 전세 살던 젊은 여자라고요. 흔적을 치우느라 물청소를 해서 바닥은 흥건했어요. 사람이 죽는 소리도 못 들었고 끔찍한 현장도 못 봤어요. 격앙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 아래층 아주머니는 내게 입단속을 시켰지요. 그러잖아도 찔끔찔끔 오를 둥 마는 둥 하는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질까 혹시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다들 쉬쉬했고 없던 일인 척했어요. 소문이 멀리 갈까 오래 갈까 염려하여 아무도 그 일을 드러내어 언급하지 않았죠.
나는 죽은 여자를 본 일이 있어요. 물론 그 여자는 나를 모를 거예요. 아시다시피 나는 누가 오래 기억해줄 사람은 아니니까요. 일 년에 한 번조차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유령 같은 사람이니까요. 요즘 누가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나요?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은 더 그렇잖아요. 그 여자도 마트나 지상주차장에서 또는 놀이터 부근에서 스쳤을 나를 당연히 모를 테죠. 그런데 나는 그녀를 알아요. 혼자서 알아버렸어요. 그렇지만 누가 떨어졌다고 들었을 때 나는 그 여자를 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어머님,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아요. 이틀이나 사흘쯤 잠을 못 자다가 나흘째 밤, 졸피뎀을 한 알이나 혹은 그걸 반을 쪼개 먹곤 하죠. 어느 날은 약을 먹고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취한 것처럼 집안을 휘청휘청 돌아다니죠. 반쯤 잠든 상태에서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먹기도 하고 화장실 앞이나 식탁 아래에서 고꾸라져 잠들었다 새벽에 깨기도 해요.
불면증이 꽤 오래되었는데 어머님께는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괜히 말했다가는 불면증엔 뭐가 좋다더라, 뭐가 안 좋다더라 하고 계속 참견하실 거잖아요. 그러다가 어떤 병원에 불면증을 잘 고치는 명의가 있다더라 하시겠죠. 얼른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아침저녁으로 성화하실 테죠. 내가 골골대면 민이나 민이 아빠 밥 굶을까 봐 뒤치다꺼리할 사람이 없을까 봐 애면글면하실 테죠. 같은 말을 듣고 또 듣고 지겹도록 듣다가 나중에는 털어놓은 사실을 분명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날도 나는 잠을 못 잤어요. 사흘이나 잠을 설쳤으니 오늘 밤은 잘 수 있겠지, 수면제 없이 잠들어 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새벽 1시에 불을 껐는데요. 도무지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가깝고 먼 기억과 감정들, 심란한 생각을 저 어둑한 천장 위에 빽빽하게 적을 수도 있을 지경이었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몸을 뒤척거리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더라고요.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민이 아빠와는 각방을 쓰고 있어요. 이불 뒤척이는 소리, 돌아눕는 소리,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에도 잠을 못 자니 어쩝니까. 너의 숨 쉬는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통 이루지 못하니 숨을 쉬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어두운 거실로 나와 현관에서 베란다로 다시 베란다에서 현관 쪽으로 갇힌 짐승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었어요. 그거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어요.
뜨개질이라도 배워볼까 했는데 소질이 없는지 서툴렀어요. 눈은 침침하고 어깨도 아프고 영 취미가 붙지 않아 금방 관뒀어요. 그래도 민이 목도리는 하나 만들고 그만둘 것을, 구석에 밀어둔 털실 뭉치를 보며 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고 민이 아빠가 비아냥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라고, 씨발. 닫힌 문에 대고 욕을 했는데 들었을까요.
종교가 없으니 기도를 할 신도 없어요. 넋두리를 늘어놓을 마음 편한 누구도 없어요. 남들은 친정어머니가 늙으면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던데 나는 이십 년을 본 어머님이나 오십 년을 본 친정어머니나 똑같이 서먹해요.
어떤 밤에는 하도 심심해서 김 한 톳을 몽땅 들기름에 재어 냉동실에 넣기도 하고 어떤 밤에는 산수화 앞에 우뚝 멈춰 유유자적 노를 저으며 서 있는 남자에게 반말로 또는 존댓말로 욕을 내뱉기도 해요.
물속을 걷듯 돌아다니다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었어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밖을 내다보았지요. 우리 집은 11층이에요. 건너편 102동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어요. 102동에서 보면 우리 집이 있는 101동도 어둠에 잠겨 있을 테죠. 새벽 4시는 그런 시간이니까요.
그때 102동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하고 켜졌어요.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세어보았어요. 하나, 둘, 셋…… 7층이었어요. 709호 베란다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누군가 잠을 못 이루고, 또는 자다가 깨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니 나도 한번 피워볼까 저걸 한 대 피우면 잠이 올 수도 있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담배를 피우면 속상한 일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던 여자도 생각났고요. 잠이 안 오니 별의별 생각과 별의별 욕구가 다 맥락 없이 떠오르는 거겠죠. 민이 아빠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그 밤에 담배가 있을 게 뭐랍니까. 가깝기라도 했다면, 어둠 속의 이웃에게 저기요, 내게 담배 한 개비만 빌려주시겠어요 이렇게 부탁했을 텐데요. 102동 709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졸피뎀 한 알을 쪼개 반을 입에 털어 넣었죠.
그 후로 베란다 앞에 서면 709호 쪽을 한 번씩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저기 사는 사람도 지금 나처럼 잠을 못 자고 있을까 하고요. 그 먹먹한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누구라도 있으면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