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by 함지연

2박 3일 동안 일본 규슈로 여행을 다녀왔다. 오전 8시 출발해서 3일째 낮 12시 20분에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동행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혼자 다닌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여행이다. 사가 규슈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이마리현, 뱃부, 유후인과 후쿠오카까지 관광하는 패키지여행이었고, 그 여행 상품에 1인 여행객으로 합류했다.


사가 공항에서 가이드와 미팅을 하며 처음 만난 인원은 25명이었다. 그중 8명이 3세대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조금 시끄럽겠군, 싶었는데 어린이까지 포함된 그들은 여행 내내 굉장히 조용했다. 부부 또는 모녀 팀이 있었고 친구끼리 온 한 팀이 있었다. 하필 나는 그녀들의 앞 좌석에 앉았다. 잘 알다시피 처음 앉게 된 자리는 끝까지 고정석이 되어버린다. 그녀들은 이동 중에 내내 수다를 떨어서 처음에는 자꾸만 그녀들의 대화 내용이 신경 쓰였고, 스토리를 알게 된 나중에는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60대인 두 여성은 친구 사이였고, 각각 인천 송도와 미국에 거주 중이다. 우정 여행을 위해 미국에서 인천까지 왔으니 그동안 밀린 수다가 얼마나 많았겠나, 싶었다.


1인 여행객은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간 식당에서 혼자 여행을 온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알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동행이 있는 이들은 당연히 한 테이블에 앉지만, 나처럼 혼자 여행객은 혼자 여행 온 다른 사람과 동석을 하게 된다. 그 여행에서 혼자 여행객은 단 두 명이었으니, 우리는 어색한 채로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나와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 여행객은 남성이다. 패키지여행에 참가한 혼자 여행객인 남녀. 소설이나 영화였더라면 운명이라거나 사건이라거나 로맨스가 일어나기 딱 좋은 조건이었지만 아쉽게도 남성은 나보다 훨씬 어렸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조카와 고모쯤 되지 않을까.

씩씩한 나와 씩씩한 그는 가이드 바로 뒤에서 잘도 쫓아다니며 잘도 걸었다. 그러면서 사소한 대화들도 나누었다. 어쩌다 혼자 여행을 즐기게 되었는가, 어느 지역에서 왔는가, 어느 곳으로 여행을 다녔는가. 그렇게 떠난 어느 여행지에서 어떤 경험들이 좋았는가.


독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는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유후인의 긴린코 호숫가에서, 후쿠오카 라라포트의 거대한 건담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사진 속 나는 조금 멋쩍게 웃고 있다. 안다고 하기에도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 앞에서 당연히 표정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으며, 비교적 자유시간이 많은 일정이어서 단체 여행이지만 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그 3일 동안, 처음엔 어색하던 사람들끼리 조금씩 대화를 주고받거나 챙겨주거나 개인적인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웃기도 한다. 엄마와 함께 왔던 30대 여성은 나와 이름이 같았다. 계속 엄마를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출국수속을 위해 줄을 서던 때, 그녀는 별말 없이 내가 맨 백팩의 꼬인 줄을 반듯하게 풀어주었다. 그런 다정함이나 배려도 당연히 인천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까지다. 각자의 여행 가방을 찾는 순간, 다시 남남이 되고 아예 잊히는 사람들이 된다. 늘 그렇듯이.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유시간이다. 아침 식사는 호텔식이었고 점심만 단체로 먹었다. 관광 일정은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되었으며 그 이후 시간은 자유였다. 잠들기 전까지 꽤 여유 있는 시간이 있었다. 호텔 근처를 산책하며 주택이나 상점들을 구경하고 슈퍼마켓과 다이소에도 가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다이소는 8시에 폐점이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저녁 식사는 식당 대신 마트에서 구입한 간편식으로 먹었다. 첫날은 계란초밥과 계란샌드위치, 타코야키 그리고 당고를 먹었다. 전부 내가 즐기는 것들이다. 둘째 날은 라라포트 내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초밥이었다. 신선하고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크고 두툼하고 쫄깃한 생새우 초밥이 맛있어서 2개만 산 걸 아쉬워했는데, 쇼핑몰에서 혼자 놀다가 마주친 다른 여행객도 생새우 초밥이 맛있더라고 했다.

초밥 도시락을 사서 3층에 있는 푸드코트에 가서 혼자 먹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세워놓고 일부러 입을 크게 벌리고 초밥을 먹는 모습을 장난스럽게 찍어 동생들과의 단톡방에 전송했다.

큰언니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논다는 문자와 함께.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호텔에 딸린 온천이었다. 투숙객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저녁마다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작은 노천탕이 있었는데 뜨거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 몸을 차갑게 말린 후, 다시 탕 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녹이기를 반복했다. 목욕을 하고 나서 노곤한 상태로 15분에 200엔인 안마의자로 마사지까지 받은 후, 숙소로 올라갔다. 마지막 날에는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온천에 6시 5분에 입장해서 마지막 목욕을 했다. 목욕하기 위해 굳이 비행기까지 타고 일본을 온 사람처럼 온천 목욕에 열심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느라 이동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많이 걷기도 했다. 그런데 피곤하지 않았다. 너무 잘 다니니, 가이드는 내게 걸음이 굉장히 빠르다고 했고, 일행 중 몇 명은 대단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내 밥 짝꿍이었던 다른 1인 여행객도 자꾸만 나를 대단하다고 했다. 대단하다는 말을 어떤 뜻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순전하게 있는 그대로 대단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난 참 대단하구나. 혼자서도 잘 놀고 잘 먹고, 그리고.


고백하겠다. 잘 자고 화장실도 잘 갔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친척집이나 친구집에 가서 절대로 밥을 못 먹었고(다른 사람들이 숱하게 사용한 숟가락을 사용할 수 없어서), 다른 베개를 베고는 잠을 자지 못했고, 다른 변기에서 똥을 싸지 못했다. 그러니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화장실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웬걸. 따뜻하게 목욕을 하고 숙소로 올라오면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고, 한 번도 중간에 깨지 않았고 아침이면 쾌변을 한 후, 가벼워진 몸으로 여행을 즐겼다.

줄을 서서 산 벌꿀 아이스크림을 걸어 다니며 먹었고,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를 위한 선물로 고르는 우산을 신중하게 골랐다. 영어도 일본어도 못하고, 굳이 번역앱을 이용하지도 않은 채, 일본인 판매 직원과 손짓과 발짓, 단어만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결국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살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단순한 디자인의 우산을 추천했고, 나는 화려한 패턴을 원한다고 하자, 안쪽까지 무늬가 있는 것들로 펼쳐 보여주었다. 귀찮아하지 않고 우산 여러 개를 펼쳐서 보여주고 접기를 반복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낮의 벚꽃과 밤의 벚꽃 두 가지를 두고 결정을 선뜻 못하고 골라달라고 하자 그는 밤의 벚꽃 무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밤이 배경인 벚꽃 무늬 우산을 샀다.

신년이라 일본인들도 많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사이를 열심히 걷고 기웃거리고 몇 가지 물건을 고르기도 하며 돌아다녔다.


혼자였지만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동행이 있었다면 동행에게 써야 했을 에너지를 오롯이 나를 위해 썼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때로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나서 힘이 소진되어 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말을 하지 않으니 힘도 덜 썼던 것 같다. 그래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잘 다녔던 것 같다. 자발적인 외톨이는 절대 아니다. 다음 여행은 동행이 있고, 말을 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수다를 실컷 떨고 나서 힘이 쭉 빠진 상태를 때로 즐긴다. 혼자일 때도 좋고 혼자가 아닐 때도 좋다.

책을 한 권 가져갔지만, 많이 읽지는 않았고, 다만 낯선 곳의 처음 보는 풍경들과 처음 가 보는 먼 곳에 있는 나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창가에 얼굴을 기댄 채 또다시 언제 어느 먼 곳으로 가게 될까 그런 것도 곰곰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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