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집을 샀다

by 함지연

내년 봄, 나는 내 집으로 이사를 한다. 진짜 나의 집.

나는 집이 없었다. 집이 없는 채로 지금까지 살았다. 결혼 전에 살던 집은 부모님의 집이었고, 결혼 후에 살던 집은 전남편의 집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지칭할 때, 그 집을 부모님의 집이라거나 남편의 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 와. 우리 집 옥상에 살구꽃이 피었어. 우리 집 세탁기가 이번에 고장 났어. 이렇게 우리 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집주인은 여럿이 아니라, 단 한 명이다.


그 집은 전남편의 부모에게서 증여받은 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을 짓는데 벽돌 한 장 값도 보태지 않았다. 그러니 전남편도 전남편의 부모도 그 집에 대한 권리는 오직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말로 표출했다.


내 집에서 나가.

또는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전남편 또는 전남편의 부모가 나와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꽂은 말이었다. 심장 가운데 정통으로 꽂는 잔혹한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 말은 지지부진한 전쟁을 단번에 끝내는 말이었다. 기권을 선언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졌다. 그저 참담했다. 나는 왜 벽돌 한 장 살 돈조차 벌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인가.


대외적으로 나는 부유한 집으로 시집가서 젊은 나이에 자가에 살며 집걱정 할 필요 없는 팔자 좋은 여자였다. 결혼할 때 시가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렵게 살던 친구 한 명은 질투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집 내부에 있는 나는 평온하지 않다. 절대로 편히 쉴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집은 내 집이 아니니까. 무례한 그들이 나가라고 하면, 정말 나가야 하나, 속으로 벌써 짐을 싸고 있었으니까. 마음속으로 수천 번 짐을 쌌다. 수천 번 자녀 셋과 함께 전남편의 집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 했을 뿐 아무 시도도 하지 못하고, 일어나 밥을 차리고, 빨래하고, 생선을 사러 시장에 가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했다. 집이 없으니 매일 춥고 스산했다.


소유권이 전혀 없는 그 집에서 떠나지도 못하면서 항상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갈 때, 그러나 나가서 내 집을 갖게 될 거라는 희망은 없었을 때, 나만 의지하는 자녀가 셋이었고, 경력단절 상태였고, 전업주부였던 당시의 나는 어떻게든 마음 붙일 곳이 절실했다. 예쁜 것이 있으면, 가꿀 것이 있으면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하나씩 늘린 화분이 마지막에는 백 개가 넘었었다. 옥상에 각종 꽃을 심고 나무도 몇 그루 심고, 그것들을 돌보며 말을 걸며 그 집 한편에 그래도 따듯한 한 구석을 만들고 살았다.


그 집을 나왔을 때 한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던 건 두고 온 식물들이었다. 그 집에 식물에게 물을 주고 가꿀 손은 없었으니, 한동안 시름시름 시들던 그것들은 이제는 모두 다 말라죽었을 것이다. 얼마나 버텼을까. 실내에 들여놓지 못한 식물들은 내가 나오고 첫 번째 겨울에 모두 죽었겠지. 주먹만큼 크고 풍성한 꽃이 피던 작약도, 초봄에 제일 먼저 팝콘처럼 폭신한 꽃을 피우던 살구나무도 이제 없겠구나.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두고 온 그 생명들이 마음을 괴롭혔다.


전세로 집을 얻고, 이혼소송을 이어 나갔다.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변론이 거듭되었지만, 어쩌면 더 길게 이어지겠다 싶을 때 마침내 소송은 끝났다. 나는 항소하지 않겠다는 상대측의 합의서를 넘겨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법적인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알아볼 참이었다. 어쩌면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집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고령기에 도달하기 전, 거주할 집이니 노년기를 앞둔 내가 살기 편한 곳을 고르고 싶었다.

병원이 가까워서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쉬울 것.

장보기가 편하고 가까운 곳에 공원이나 산책로가 있을 것.

부모님, 형제, 자녀들과 왕래하기 편할 것.

너무 신축이나 너무 구축은 피하고 건축 시기가 10년 내외일 것.

(신축은 매수 가격이 비싸고, 구축은 가격이 싼 대신, 수리비를 계속 지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을 실컷 받아들일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테라스가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베란다 공간은 컸으면 좋겠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20대 이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20대에 살았던 부모님 집의 마당은, 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작지만 연못이 있었고, 2층 높이의 모과나무가 있었고 각종 꽃들이 가득했다.

서울에서 그런 집은 이제 찾기 쉽지 않고 대신 옥상을 마당처럼 꾸미고 살았었다. 거실에 있는 발코니 공간도 그냥 두지 않고 작은 꽃밭으로 만들었던 나였기에, 식물이 함께 살 만한 공간도 집을 선택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집에서 검색하거나 부동산에 들러 매물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실제로 가서 집을 본 것은 세 번이다.


첫 번째 집은 지금 거주 중인 동네라서 안정감을 느꼈다. 만족도가 높아서 될 수 있으면 이 동네에서 집을 얻고 싶었는데, 지금 집에서 멀지 않았다. 전철역에서 도보로 5분이라는 것도 좋았고, 건축한 지 10년 차 건물인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황홀하게 했던 것은 테라스 공간.

사진만 보고도 반해버렸다. 집을 보러 가기도 전에, 그 넓은 테라스에 무엇을 둘지 머릿속으로 배치했다. 사진을 보여주자 동생은 한술 더 떠서 캠핑 의자와 알전구를 추천했다.

실제로 보니 역시 테라스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테라스 공간을 그만큼 뺐으니 반대로 집 내부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테라스냐 실내냐를 정해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래도 내부 공간이었다.


두 번째로 집을 보러 갈 때는, 처음 경험이 있었기에 테라스를 포기했다. 두 번째 집은 ㄱ자로 꺾인 넓은 베란다가 있었다. 역시 그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식물을 실컷 들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구축 아파트여서 실내 공간도 넓다. 그리고 부모님 집과 가까웠다. 동생도 도로 건너편에 살아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된다. 시장과 전철역은 모두 도보 5분 거리. 인절미가 기가 막힌 떡집도 가까이에 있었다. 한 번만 더 보고 계약하기로 하고 방문해서 천천히 둘러본 후, 나는 그 집을 포기했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리모델링 비용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출하게 될 것 같았다. 보일러 설치 시기 역시 오래되어 이사하자마자 보일러 교체를 해야 할 것 같고, 낮에 본 아파트 외관도 낡아서 도색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수리하면 당연히 넓고 예쁜 집이 될 것 같긴 한데,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돈.


두 번째 집을 소개했던 부동산 사장이 다른 매물로 추천한 세 번째 집. 나는 그 집을 매수했다.

처음 집을 보러 다닐 때의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신축이라서 가격이 비싸다(대신 리모델링 비용은 전혀 들지 않는다).

주상복합아파트라서 테라스는커녕 베란다, 발코니 공간이 없다

(이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속상하긴 하다. 그래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중도금까지 보낸 지금도,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테라스나 베란다가 있는 부동산 매물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도 급매로 나온 매물이라, 경제적인 부담이 덜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아꼈고, 수납공간이 넉넉해서 잡동사니 많은 내게는 장점이다.

전철역과 대형병원은 5분 거리이다. 꽤 크고 활성화된 재래시장도 10분 거리에 있다. 대형마트는 없는 대신 대형 다이소가 있다. 나에게는 훨씬 좋은 조건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집과 마찬가지로 내 원가족들의 거주지와 가깝다. 슬리퍼를 신고 언제든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이사한다.


우리 나이로 60살,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애매하지만, 분명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나이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곧 환갑을 앞둔 나이, 나에게 커다란 환갑선물을 했다. 그동안의 나는 집이 없었고, 집이 없는 채로 나 자신과 가장 많은 전투를 벌이며 살았다. 처음 갖게 된 내 집에서 그동안 참고 견디고 애쓰며 살아온 나 자신을 스스로 돌보면서 잘 지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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