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해서는 아니고, 재미 삼아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도 신년운세를 무료로 볼 수 있고 챗지피티에게 물을 수도 있다. 또는 인스타그램의 릴스에서 나이별, 띠별 운세를 확인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사주 풀이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수도 있겠다.
어느 시기에 귀인이 나타날 것이다, 또는 몇 월에 귀인이 나타나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무리 재미로 본다지만, 그래도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데 좋은 일 아닌가. 당연히 기대된다. 그런 사람이 정말 짠 하고 등장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봄에, 6월에, 또는 하반기에 나타나서 나를 도와줄 것이라던 귀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믿을 게 못 돼. 그렇게 실망한다.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서 궁지에 몰린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꺼내주기를 소망했다. 그게 백마를 탄 왕자일 수도, 하반기에 나타날 귀인일 수도 있었다.
나는 문 안에 있는 사람. 한참이나 문 안에 있던 사람. 백 년 동안 잠을 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던 사람.
귀인은 그 문을 열고 안에 들어와서 웅크린 나를 일으켜 세웠어야 했다. 우는 나를 달래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어야 했다. 얼른 나가라고 등이라도 떠밀었어야 했다. 그러나 문 밖의 그 누구도 문 안의 나를 도우러 오지 않았다.
문 안에는 누가 있었더라. 온통 나를 할퀴는 사람들. 내가 나인 것을 원치 않던 사람들. 나에게 주어진 역할만 열심히 수행하고 만족하기를 바라던 사람들. 내가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로 있어 주기를 바랐던 사람들.
안에서 잠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면 그가 과연 귀인이었을까. 무례한 그를 나는 귀인이라고 반겼을까. 경제심을 풀고 의심 없이 그에게 어서 들어오시라, 했을까. 아마도 나는 더 깊은 구석으로 숨었겠지.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린 채로. 귀인은 오지 않았다.
우물 속처럼 고여있던 문 안에서 밖으로 나온 것은 결국 나 자신의 힘이였다. 내가 일어났고, 내가 문을 열었고 내가 문밖으로 나가 걸었다.
걷다가 사람들을 만났다. 예상하지 못한 길목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어딘가를 산책했다. 그들과 어떤 것들을 시도했다. 그랬더니 이전에는 몰랐던 그들이 이제는 귀인이 되었다.
글쓰기를 배워볼까 하고 등록했던 동네 문화센터 에세이 강좌 강사님은, 재능이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등단하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등단비를 받는 문예지에 글을 보내라는 몇 차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등단을 장사처럼 악용하는 단체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을 함께 배웠던 수강생 미아 씨는 수업 중에 합평했던 내 소설을 신춘문예에 응모해도 좋을 만큼이라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좀 더 다듬어서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내게 일단 보내라고 거듭해서 용기를 주었고 11월에 초고를 썼던 그 소설은 새해 첫 신문 지면에 발표되었다. 신문사로부터 당선 확정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사람은 당연히 미아 씨다. 그녀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어린아이가 있던 그녀는 아기를 업고 어르며 남편에게 내 소설의 일부를 낭독해서 들려주고 서로 소감을 나누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전자책 만들기 특강 게시글을 보며 망설이다 마지막 날, 신청서를 냈고 첫 번째 전자책이 나왔다. 그 특강을 진행했던 1인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와는 그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져서 내 단편소설들을 묶어 여러 지원 사업에 도전했다.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시간을 들여서 나를 위해 애를 써주었다. 글을 계속 쓸 힘이 생겼고, 두 번째 전자책과 단독 에세이가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함께 전자책을 공저했던 작가 중 한 명과 오디오북을 내기로 했고, 편집 과정을 거쳐 오디오 북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어린 자녀 둘을 양육하느라 바쁜 30대의 그녀는 시간을 쪼개 녹음을 했는데, 녹음 장소는 무려 그녀의 집 붙박이장 안이다.
이사를 와서 2년여를 산 동네의 작은 미용실 원장님과의 만남도 재미있다. 나는 지나가다 들어가서 머리 손질을 한 손님이었다. 60대 중반의 원장님은 머리 시술을 하다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내 책을 주문하고, 이제는 손님들에게 홍보까지 열렬히 하고 있다. 3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영업 중이라 30년 된 가족 같은 단골들이 세대를 이어 다니는 곳이었다. 덕분에 독자가 늘었다. 지금도 지나가다 미용실 쇼윈도를 들여다보면 너덜너덜해진 내 책이 놓여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는 문 안에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하고 내게 안정감을 주고 따듯하다. 나는 이 공간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낼 때도 있지만, 외롭지 않다. 고여있지도 않다 문 안에 있는 나는 식물의 잎이 짙어지는 것과 새싹이 돋는 모습을 골똘히 살핀다. 냉동실에 있는 가루들을 꺼내 단순한 맛의 쿠키를 만들기도 하고, 과일을 으깨 잼을 만든다. 과일이 졸여지는 동안, 달콤한 냄새를 킁킁 맡는다. 어질러진 서랍 한 칸을 와르르 쏟고 정리하기도 한다. 잡동사니 한 두 개를 버리거나 잊었던 사물을 발견한다. 문 안의 나는 심심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문밖으로 나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밖으로 나가 걷는다. 익숙한 길을 걷기도 하고, 처음 보는 골목을 만나면 그쪽으로 발을 내딛기도 한다.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곳 어디쯤 귀인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나의 귀인은 무례하지 않다. 사려 깊고, 내가 안도하는 거리만큼 넘어오지도 않는다.
귀인은 내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다르게 살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문밖에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그러니 지금 문 안의 내 삶이 안온하고 만족스러워도 내일의 나는 문을 열고 문 밖을 만끽하러 나설 것이다. 문 밖의 귀인을 마중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