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그냥 맥시멈리스트로 살래

by 함지연

가끔 만나는 지인들이 있다. 공공도서관의 단기 근로자로 일하며 알게 된 이들이라 사는 곳도 가깝다. 그날도 저녁 시간에 만난 우리는 끼니가 될만한 음식 몇 가지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일과 부모님의 건강,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다음날 출근하는 이도 있으니 그만 일어나자고 했던 시간이 오후 10시. 이자카야에서 나온 우리는 전철역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그때 지인 1이 갑자기 자신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자고 했다. 걸어서 5분이 채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양쪽에 팔짱을 끼고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따라 얼떨결에 집으로 향했다. 남의 집에 방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의 집은 놀랍도록 정리 정돈이 잘 된 집이었다. 자녀가 독립을 한 2인 가구였고, 20평이 안 되는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잡지에 나오는 집을 직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밖으로 나와 있는 잡동사니가 없었고 벽에 걸린 것도 없었다. 집구경을 하겠다며 잠깐 둘러보았는데, 보통은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아두는 베란다조차 놀랄 만큼 비워져 있었다.

그녀는 그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에는 바로 약속 장소로 왔다. 손님 초대를 위해 청소를 할 시간 여유는 없었다. 그 초대 역시 즉흥적인 것이었으니 평상시에도 그렇게 단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공간일 것은 분명하다.


식탁에 앉아 우롱차를 마시며 30분쯤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의 집에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그녀의 미니멀한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따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 맞은편에 앉았던 지인 2가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확언했다.

언니는 안 돼요.

왜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언니는 취미가 많잖아요. 취미가 많은 사람은 절대 미니멀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바로 수긍해 버렸다.

내 집을 지인 1의 집과 비교해 보았다. 역시나 극단적인 미니멀 대 극단적인 맥시멈이다. 자잘한 사물들이 어질러진 식탁 위와 책상, 책장. 베란다에 층층이 쌓인 물건들. 완벽하게는 못하더라도 미니멀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미 있는 것 중에 불필요한 것들과 ‘설레지 않는’ 옷을 과감히 처분해야 했다. 그리고 더는 물건을 사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일 년 이상 입지 않은 옷, 더는 설레지 않는 옷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멀쩡한 것을 버리는 것은 역시나 망설여진다.

이사를 앞두고 꽤 많은 것들을 버리고 있다. 2년 전, 이사를 하며 많은 것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2년 머물렀던 공간에 또 버릴 것이 있다니 놀랍다.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가 금방 가득 차고, 폐기물로 버리거나 중고 거래로 판매 또는 나눔을 한다. 냉장고 안의 먹거리들도 정리 중이다. 고백하자면 2년 전에 얼린 식재료나 음식을 넣은 봉지를 여러 개 발견해서 폐기했다. 5인 가족 살림을 30년 가까이했던 나에게 대용량으로 식재료를 쟁이는 습관이 아직 남은 모양이다. 식구도 줄었는데 굳이 마늘을 몇 접씩 찧어서 냉동시키고 장아찌를 담고 있나. 사람이 되려는 곰도 아니고 매 끼니 마늘을 씹어먹으며 올해부터는 절대로 마늘을 잔뜩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버리고 팔고 나눔을 해도 여전히 내 집은 맥시멈이다. 조금도 미니멀하지 않다. 식재료나 생필품을 비축해 두는 습관은 차츰 고쳐질 것이다. 2인 가구에 맞는 살림에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니 냉장고나 그릇장, 다용도실이 맥시멈 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조금은 느슨하고 단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취미 부분에서 미니멀리스트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지인 2의 말은 정확했다. 취미가 많은 사람은 절대로 미니멀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알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 역시 내가 취미 부자인 것을 안다. 그림 그리기와 사진, 식물 가꾸기 그리고 비즈 공예까지. 각종 다양한 취미 생활을 진행 중이다. 각각의 취미마다 각각의 재료들이 필요하니 당연히 맥시멈리스트일 수밖에. 심지어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취미에 기웃거리고 있으니 짐은 점점 늘어난다.


그림을 예로 든다면, 내게는 유화와 수채화, 아크릴화, 수채화, 펜, 오일파스텔까지 각종 재료가 있다. 물감 이외에 필요한 도구들 또한 갖추고 있다. 목재 팔레트와 종이 팔레트가 있다. 단단한 제형의 오일파스텔과 무른 제형의 오일파스텔을 갖고 있다. 금방 닳는 색은 추가로 더 갖고 있는데, 택배비를 아끼겠다고 한 번에 넉넉하게 주문했다. 캔버스와 붓은 크기별로 다양하게 갖고 있다. 최근에는 책상에 앉아서 사용할 책상용 이젤을 새로 구입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도 비즈로 공예를 하는 것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고 물건들은 늘어난다. 취미생활을 하며 나오는 결과물 또한 넘친다. 삽목 한 식물들은 점점 키가 크고, 비즈로 만든 장식품은 늘고 그림 역시 그렇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그 취미들을 접어야 하나, 맥시멈리스트는 고민이 많다.


그러다가 최근에 집을 보러 온 이들을 통해 맥시멈리스트인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갑자기 집을 보러 오겠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흐트러진 침구부터 정리했다.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신혼부부였다. 그들은 안방부터 차례로 집의 구조를 살피며 둘러보았다. 구조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길래 흔쾌히 그러라 했다. 그런데 집을 둘러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호의적이었다. 아니, 신기해했다고 해야 할까. 진짜 사람이 사는 집 살고 싶은 집 같다는 말을 전하며 집이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만든 비즈 모빌을, 식물을 심은 화분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유화물감으로 그린 숲 그림을 확대해서 찍었다. 나는 설명하고(집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 사물들에 대해서이다) 그들은 들여다보거나 살짝 만져보거나 사진을 찍고 예쁘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집을 보고 간 후, 십여 분만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집을 보고 간 신혼부부가 계약할 것이니 더는 집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호의적인 소감을 들으니 갑자기 내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사물들이 있는 공간. 그림과 알록달록한 색과 짙은 초록과 옅은 초록의 잎사귀들이 있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촤르르 늘어놓고 몰두할 수 있는 공간. 편안한 의자와 화려한 무늬가 있는 서랍장과 창가에 매달린 선 캐쳐가 가만히 흔들리는 공간.

누군가는 비워내며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채워가며 편안함을 느낀다. 영화 <마담 프르스트의 비밀정원>을 보며 그녀가 살던 아파트 내부에 매혹당했던 것처럼 오래전에 살았던 집의 서쪽으로 난 작은 다락방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나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물들이 채워진 공간에 더 끌리는 성향인가 보다.


미니멀리스트가 맞고 맥시멈리스트가 틀리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자신이 안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되겠지. 물론 한정된 공간에서 슈퍼 울트라 맥시멈리스트로 살아가는 일은 절제할 것이다. 그리고 숨이 턱 막히는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한 공간쯤은 미니멀하게 비워둘 생각이다.


맥시멈리스트로 살다가 가끔씩 미니멀한 공간이 그리울 것이다. 그럴 때는 해결책이 있다. 바로 여행을 떠나는 것. 여행지에서의 숙소에 머물며 미니멀한 공간 속의 나를 오롯이 느끼고 오는 것. 그러니 이번 생은 미니멀리스트를 추앙(만)하는 맥시멈리스트로서 잘 살아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