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오로라를 보러 함께 떠날 친구와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둘 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낯선 나라이지만, 친구에게는 친숙한 곳이다. 그녀의 동생 가족과 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동생은 캐나다인과 결혼 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친구는 하루 이틀쯤 동생 집에 머물고 싶어 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이니 당연하다.
그러자니 동행인 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처음 가 보는 곳이라 생소하고 두렵지만 친구에게는 낯설지 않은 곳이니 그녀를 믿고 떠나는 것이 맞다. 용감한 척은 혼자 다하고 다니지만, 내 실체는 겁쟁이. 열 시간도 넘는 비행시간을 견디며 가는 캐나다는 내가 살아온 중에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곳일 터이다. 그러니 겁이 날 수밖에.
친구와 여행의 세부적인 일정 짜는 일을 돕던 친구의 딸은 친구가 동생의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함께 고민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나도 같이 동생의 집에 방문하는 것과 그게 불편하다면 따로 숙소를 얻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중 어느 방법이 편한지 내게 물었다.
설마 불편할리가요.
하긴.
우린 피식 웃었다.
요즘의 나는 오랜 낯가림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나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니 친구의 동생 가족과 만난다고 해도 불편할 일은 전혀 없다. 그렇긴 한데 인사라도 나누려면 이제부터라도 단어라도 하루에 열 개씩 외워야 하나.
여행 날짜는 아직 여유 있게 남아있으니 일정을 조율해 가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천천히 정할 것이다. 나는 불편하지 않지만, 친구가 가족과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
1월의 어느 한 날은, 전날 내린 눈이 쌓인 두물머리를 산책했다.
아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었다.
나의 아는 사람은 최근에 친해진 사람이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오랜 지인 사이였다.
원래는 나와 아는 사람 둘이서 두물머리를 가기로 했었다.
아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일을 쉬는 날이면 혼자 차를 타고 가서 걷다 온다고 했다. 지난번부터 몇 번이고 내게 함께 가자고 했었다.
마침내 둘 다 괜찮은 날을 잡았는데, 아는 사람이 내게 한 사람이 더 동행해도 괜찮은지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과 함께 양평에 갔다.
맛있는 연잎밥을 먹고, 북한강이 보이는 카페의 난롯불 옆에서 담소를 나누고, 두물머리를 산책했다.
풍경을 찍고, 풍경 속에 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었다.
충분히 다정했다.
나는 60년을 살았고, 그중, 30년 가까운 세월을 협소한 관계 속에 머물렀다. 답답함을 못 느꼈던 것은 아니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도 많다. 전 배우자의 원가족들과 한 동네에 살았으니 관계를 확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생선 한 마리를 사도 아는 사람이었고, 같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같은 은행을 이용했으며 길에서 수시로 마주쳤다. 사촌들이 같은 학교를 다녔으니 서로 아는 학부형이 겹치기도 했다.
남성 가족 중심주의가 강했기에 내 원가족들과도 거리를 두었다. 기껏해야 명절에 얼굴을 보는 정도.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나아지지 않은 채로 지속되는 갈등에 결국 포기했고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가 나이지 않을 때, 결혼으로 생긴 관계 안에서 부여된 역할-아내, 며느리, 엄마-에 최선을 다할 때 평화는 유지되었다.
오래된 친구들은 멀어졌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는 오지 않았다. 배우자의 원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동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30년 동안, 관계는 넓어지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동생과 여행 한 번을 떠난 일조차 없다. 그때 나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때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걸까. 지금의 내게는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아는 사람뿐 아니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내게로 온다. 잠깐의 인연일 때도 있고, 조금 더 머물기도 하고, 어쩌면 더 오래 곁에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기도 한다.
뷰티 블로거도 있고 출판사의 대표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미용실 원장도 있다. 도서관 사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 교회의 장로님, 교장 선생님과 독립서점의 주인도 있다. 30대의 친구도 새로 사귀었고, 70대의 친구도 새로 사귀었다.
오늘 만난 60대 중반의 여성과도 친구가 되었는데 언니라고 부르라 해서 만난 지 1일 만에 언니,라고 호칭을 정했다. 언니와는 봄날, 안산 자락길을 함께 걷자고 약속했다.
읽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아는 사람이 생겼고,
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눌 아는 사람이 생겼고,
오로라를 함께 보러 갈 아는 사람이 생겼고,
아직 가 보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꿈을 꺼내놓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생겼고,
차를 타고 풍경 속으로 떠날 아는 사람이 생겼다.
그 아는 사람들이 아는 '나’의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나’는 완성되어 갈 것이다.
아는 사람이 계속 생기는 이상, 그들을 통해 나는 여전히 변화하고 배우고 성장 중일 것이다.
그러니 어서 오소서. 나의 삶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