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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Aug 01. 2020

여자의 인생은 직진 인생이 아니다.

육아라는 레이스에서 차선 변경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까지.

생후 6개월도 안 된 둘째를 맡겨 두고 운전연수학원에 등록했다. 장롱면허 10년 만이다. 면허는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 따라 20살이 되자마자 면허를 땄다. 욕심은 많아서 그것도 보통 1종으로 자랑스럽게 한 번에 합격을 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안산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면허증을 받아 집에 가는 길에 한 스릴 넘치는 첫 운전을. 바로 해보지 않으면 감이 떨어진다고 엄마는 무슨 배짱(?)이신지 나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셨다. 집까지 1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나에겐 마치 몇 시간과 같이 느껴졌다.

"옆 차선에 그렇게 바짝 붙어 가면 어떻게 해!! 옆에 버스랑 너 방금 닿을 뻔했잖아!!"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차선을 맞춰 달리는 것도, 옆 차선으로 이동하는 것도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어려웠다. '대체 내가 어떻게 면허를 받을 수 있던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고 내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무사히 도착한 후 나는 다시는 운전대를 손에 잡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이가 하나일 때는 그럭저럭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괜찮았는데 둘이 되니 더 이상 안 되겠더라. 신혼집은 말 그대로 숲세권이었다. 산속에 자리 잡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거라곤 동네 슈퍼와 중앙 도서관, 산림욕장. 아이와 뛰어놀기는 정말 최적의 곳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 곳을 좋아한다. 기회만 되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병원, 큰 마트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야만 했다. 날씨가 궂은날에는 더욱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 타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큰 맘먹고 운전연수를 받기로 한 것이다.



"함여사~ 2시간 동안 직진만 할거 아니지?"

연수가 끝나고 종종 옆좌석에서 나의 운전을 봐주던 남편이 말을 던졌다. 차선 끼어들기를 못하는 내게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조차 나는 받아칠 수 없다. 운전 초보자에게는 운전하면서 대화를 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다. 마치 멀티플레이어를 못하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던져주는 것 같았다. 왜 이리 신경 쓸 것이 많은지. 운전을 하려면 앞 차와 뒤차, 옆 차 모두 다 신경 쓰면서 가야 한다. 뒷 자석에서는 둘째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시동을 끄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게다가 정말 어려운 차선 변경까지.! 생명을 건 눈치게임 같다.







연속해서 통잠을 자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2-3시간마다 깨서 젖 달라고 보채는 둘째, 가정보육 중인 첫째는 놀아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왔다. 사람에게 의식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육아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 둘을 보느라 밥을 제때 제대로 먹을 수도, 잠도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잘 수도 없었다. 눈 밑 아래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맞는 옷이 없어 입은 남편 티셔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제일 컸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실 여유도 없었다. 초보 엄마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다. 둘째 젖 먹이면서 첫째에게 책 읽어주기, 둘 다 울 때 달래주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내 밥 챙겨 먹기. 나에게도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오직 육아에만 온 힘을 다해 쳐나가는 길 밖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 믿고 집중하는 수밖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 건 막내가 돌 지나고 나서부터다. 여전히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셋째지만 언니 둘이 있어서 그런지 언니들을 따라다니면서 잘 놀곤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육아라는 길고 긴 레이스에서 이제 옆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도 슬쩍슬쩍 하면서 달리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초보 엄마는 육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뭐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듯 육아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지면 그땐 옆 차선으로 넘어가는 것도 슬슬 해본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한 시간과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당장 직진만 하는 것 같더라도, 결국엔 익숙해지면 자유롭게 옆 차선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자가 된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장 직진만 하고 있어 우울해하지 말고 멀리 봤으면 좋겠다. 언젠가 자유롭게 육아와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지금이 육아에 집중해야 할 때라면 화끈하게 집중하고, 익숙해졌다면 조금씩 나와 잘 맞는 것들을 찾아보자. 여전히 나에게 차선 변경이란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빽빽한 차들 속에서는 아직도 긴장되지만 나는 예전보다 더 고난도의 차선 변경도 할 수 있다. 육아 경력 7년 차, 나도 이제 초보 딱지는 뗀 것 같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마다 새로운 과제가 던져지겠지만 더 이상 겁나지는 않는다. 조금은 자유롭게 육아와 나의 정체성 사이를 오가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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