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과잉과 격정 연기에 대하여
SBS에서 48부작으로 방영됐던 TV 드라마 <황후의 품격>
정말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의식적으로 다른 채널을 돌려야 한다 생각하지만 정작 리모컨을 쥔 내 손은 마비된 채 난 그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고 있다.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가 돼 황제에게 시집온 명랑 발랄 뮤지컬 배우가 궁의 절대 권력과 맞서 싸우다가 대왕대비 살인사건을 계기로 황실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작가 김순옥이다.(참고로 김순옥은 작가 김수현의 본명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아내의 유혹>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며 악녀 시대를 개막한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비현실적 소재와 개연성 없는 전개, 막장 스토리의 전형적 소재를 등장시켜 항상 논란을 일으켜 왔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막장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며 시청자로서 그것을 담아내기에는 정서적 부담과 피로를 심하게 느낄 정도다. 모두 서술할 수 없지만, 불륜과 적나라한 베드신, 그리고 입헌군주제의 황제가 부하직원을 성노리개로 탐닉하는 등 자극적이고 저질스런 설정, 그리고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나 체벌 장면들은 사디즘의 가학성을 드러낸 충격적 장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후의 품격>은 방송 3주 차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암튼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지적 사유의 소비보다 감정의 소비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화의 오류일지는 몰라도 시청률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된 듯 보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런 사실을 비판하는 나 같은 뿌띠 부르주와를 조롱하듯 말이다.
무엇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연기자들의 감정 과잉이다.
악인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를 상실하고 각각의 시퀀스 단위에서 장면의 목표만을 위해 그려내다 보니 복합적이며 다층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하고 성격이 흔들리는 사이코패스 같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악인들이 윽박지르거나 때려 부수는 등 순간순간의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모습들로 혹은 캐릭터의 관통선을 이해 못 하고 목표를 상실하여 우왕좌왕하는 배우의 당혹감으로 비친다.
막장의 행동들 가령 흥미를 조성하기 위해 표현되는 과잉된 행동들은 주로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목격되는데, 그것은 멜로드라마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된 도덕성, 그리고 과잉된 감정을 통해 대중적 호소하는 데 기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멜로나 신파가 대중으로부터 탄생된 상업물인 점, 그리고 지식인들보다 신흥 자본가들의 사랑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지적 판단보다는 감정적 소비를 그리고 그것이 상업의 수단으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근대에서 보여주었다. 더 자극적인 장면의 배치와 과잉된 감정의 분출을 통해 대중의 감각을 들끓게 함으로써 지식인들이 점유하던 도덕적 엄격성을 쫓아가려 한 것이다.
막장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고대 비극의 플롯에서 보여주는 것은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을 정도다. 아비를 살해하고 엄마와 결혼한다거나(오이디푸스),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아가멤논) 또 아들이 엄마를 죽이는(오레스테스) 등 그리스 비극의 플롯은 막장 그 자체다. 그럼에도 그들의 연기에서 정서적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절제된 연기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보여주려는 것은 막장의 형태나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막장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감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것은 고전주의가 지키려던 형식, 억제된 감정, 균형, 상식 등이며 그것들을 통해 개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우주적 질서를 발견하는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물론 멜로드라마 역시 도덕성을 전재로 한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선을 쫓는다. 멜로드라마가 본질적으로 권선징악을 쫓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 이 극단적 윤리성이 문제가 된다. 쉽게 말하자면, 선악의 극단적 분리와 격렬한 대립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비롯된 단일감정의 윤리성이다. 단일감정의 윤리성을 통해 모든 복합적 감정들을 배제하고 선과 악이라는 이항대립 윤리구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원인이라든지 악인의 필망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책임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의 사적 윤리 영역이라는 하위 구조로 선과 악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인과 악인의 전형성이 드러나고 자신에게 부여된 단일감정의 연기선에 충실하여 고정불변의 선인을 혹은 악인을 구현해 낸다.
비단 연기뿐만이 아니다. 극의 진행과정에서 멜로드라마에서 보이는 소재들, 가령 치정살인, 삼각관계 등의 통속성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사건 전개의 방식, 행위의 표현 양상, 결말의 처리방식 등이 그러하다. 그것은 극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잘 짜여진 극’(Well made story) 형태로 완성도를 높여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의 이데올로기적 지배구조의 논리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의무적 장면과 논리적 결말에서다.
이 과정에서 선인을 괴롭히던 악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선이 승리한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극작술에 끼친 선악의 이항대립구조는 역할에 있어 심리적 발전보다는 선과 악의 기호체계에 맞춰 단일감정을 소화하게 된다.
그것은 고전 비극에서 보여주었던 하마르티아(비극적 결함) 따위는 절대 포함하지 않는다. 결국 멜로드라마에서 선인에게도 악한 순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악인에게도 선한 순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망각된다. 따라서 멜로드라마 연기에서 내적 상태는 무의미하게 된다. 전형적 연기선을 만들어가기에 인물의 감정과 동기에 대한 부분은 직선적이며 단순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선인을 더 선인답게 악인을 더 악인답게 그려내기 위해 극단적 감정의 과잉을 불러일으키고 선과 악의 가면을 통해 불가변적 연기 혹은 통속적 연기로 인간 삶의 감정을 단일화하게 된다.
멜로드라마에서 외적 플롯으로 드러나는 사실 자체의 자극성은 더 고조되고 따라서 극 내부에 존재하는 서브텍스트는 소실된다. 그러나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 멜로드라마 역시 역할의 내면을 복원하고 숨어 있는 의미들을 파악하여 내면 연기를 끌어올린다면 어떨까?
연기자가 복합적인 내적 상태를 단순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극 분위기에 맞게 욕망의 내적 행위를 품어 내는 것 말이다. 연기자가 캐릭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말과 행동이라는 외적 표현을 통해 목표를 드러낼 것이 아니라 목표를 내재화시키고 직접발화보다는 연기의 객관화에 집중하여 심리상태를 축적시켜 풀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지적 고민보다는 감정소비를 선택한 듯 보인다.
감각에 의존하고 따라서 더 대담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의 나열 제시하는 것들이 오히려 쉬울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에만 모든 것을 떠넘기기보다 조금은 사회비판적 문제를 제시하고 선과 악의 이항대립을 근본적인 통찰의 주제로 던져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나아가 선인과 악인으로써가 아니라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에 있어 각 캐릭터의 복잡 미묘한 내적 갈등을 더 극대화할 배우들의 연기고민도 필요하다 본다. 또한 너무 자극적인 요소를 경쟁하듯 전시할 것이 아니라 왜 그 악행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사회도덕적 물음이 필요하다. 마치 하드코어물이나 포르노를 감상하는 것처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은 사유가 아닌 감각자극으로 가해지는 무차별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작가도, 연출자도, 연기자도 그리고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시너그라퍼들은 시청률보다 시청하는 사람들의 감각소비 혹은 감정소비에 대해 조금은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모든 태레비키즈들은 조금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감정과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19.01.09.
사진 1. 황후의 품격 중에서 콘크리트 가학장면 캡처(다음미디어)
사진 2. 황후의 품격 중에서 화상고문과 채찍 가학장면 캡처(다음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