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션캡처는
연기예술인가? 과학기술인가?

by 최성진


모방(미미크리)에 기반을 둔 연기의 역사는 인류의 시작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단순히 행동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미미크리와는 달리, 미메시스에는 인식론적, 미학적 배경이 담겨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미크리보다는 미메시스에 더 중심을 두어 강조하였다. 그것은 타자와 객체를 닮아가는 관계성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플라톤은 <국가> 제10권에서 ‘시인추방론’을 제시한다. 시인(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극작가)이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적 공동체에 제외시켜야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시인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것은 진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미메시스가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에 따르면 시(연극)가 미메시스의 양식을 따르기 때문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침대의 비유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설명하자면 그는 참된 것으로의 침대, 즉 이데아의 침대, 이상적 침대가 있고 이를 토대로 목수가 만들어 낸 가구로써 침대, 그리고 목수가 만든 침대를 보고 화가가 그려낸 침대가 있다. 목수는 이데아의 침대를 모방해서 침대를 만들고 화가는 목수가 만들어낸 이데아의 모방물에 대한 2차 모방으로 침대 그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과정에서 참된 것 이념에 대한 인식(episteme)을 객관적 이념에 근거하지 않은 주관적 의견(doxa)에 대립시킨다고 보았다. 풀어 말하자면 이데아의 침대를 주관적 해석에 의해 목수가 만들어 내고 그 모방물을 또다시 화가의 주관적 의견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자 플라톤이 보기에는 가장 참된 이념, 즉 이데아에 대한 인식을 두 번 이상 왜곡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인의 모방은 원본에서 두 단계나 떨어진 열등한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는 달랐다. 그는 이데아가 경험세계와 분리된 게 아니라 각자의 형상(eidos)으로서 주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모든 예술은 모방이라 규정하며 그 배경에 인간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미크리를 지닌 대상, 모방 능력이 탁월한 동물이고 모방을 통해 배움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본문에서 벤야민이나 아도르노와 관련된 미메시스 이론들은 생략하겠다)

내게 모방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한 작품이 <혹성탈출>이다.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불의 <혹성탈출>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시리즈다. 찰톤 헤스톤 주연의 <혹성탈출>(1968)을 시작으로 <혹성탈출 지하도시의 음모>(1970), <혹성탈출: 제3의 인류>(1971), <혹성탈출: 노예들의 반란>(1972), <혹성탈출: 최후의 생존자>(1973), <혹성탈출>(2001),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의 9편의 작품과 TV시리즈를 편집하여 개봉한 <혹성탈출: 혹성귀환>(1981)이 있다.(이 글에서 작품에 나타난 타자성에 대한 정치적 함의, 혹은 사회적 논의 들은 생략 하도록 하겠다)

프리퀼 장르로 제작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전작들과 다른 차별성을 지니는데 이야기의 시점과 뿐만 아니라 동물연기에도 혁신적 결과물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분장 기술에 의존한 혹성탈출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모션캡처*의 활용은 나름 미술적 완성도를 높여 놨다. 단순히 미학적 결과뿐만 아니다. 모션캡처라는 분야의 연기에 대한 논쟁의 단초를 마련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 모션 캡처는 센서 감지 장치 혹은 카메라가 설치된 장소에 각 관절부위 및 신체 각 부분에 센서를 부착한 사람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잡아내어 데이터를 모델링 된 3D 객체에 부여해서 좀 더 실제에 가까운 움직임을 주는 기법이다. 최근에는 게임과 애니메이션까지 사용 범위가 확장되었으며, 근육이나 얼굴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 등장하여 영화 제작에 사용된다

모션캡처 연기 논란의 중심에는 앤디 서키스라는 인물이 있다. 런던 출신의 서키스는 <혹성탈출>의 침팬지 시저에 대한 뛰어난 연기로 많은 찬사를 받은 배우다. 이미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통해 모션캡처 연기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모션캡처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침팬지 시저를 연기하면서부터다.

알다시피 앤디 서키스는 자신의 이름 보다 시저나 골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다. 그는 모션 캡처 연기로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으로 ‘모캡의 왕’이라 불린다. 모캡의 왕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는 센서 달린 슈트를 입고 새로운 연기 과학의 기술을 습득해야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버리고 기술에 의존한 배우라는 부정적 평가를 감내해야 했다.

1964년생, 영국 출신의 배우 앤디 서키스는 이미 영국의 명품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듯 그 역시 셰익스피어의 문화적 혈통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정통배우로 연극무대에서 쌓은 경력을 발판으로 지금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방송이나 저예산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으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달랐다. 이후 <킹콩>에서도 등장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더빙 배우 정도로 인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모션캡처 연기나 실제 연기의 본질은 같다고 언급했다. 기본에 충실한 배우, 앤디 서키스는 음성변조나 믹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성으로 골룸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영화 <킹콩>에서 고릴라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르완다의 야생보호 구역에 머물면서 2달 동안 고릴라의 습성은 물론 17가지 발성법을 익히기까지 했다. 이러한 연기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션캡처라는 기술에 대한 찬사 혹은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 다시 말해 얼굴 없는 앤디 서키스의 연기에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리고 모션캡처 연기에 대해 중요한 기회가 찾아온다.

<혹성탈출>의 시저다.

그가 보여준 작품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연기는 <혹성탈출>에서의 시저 연기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성과물임과 동시에 영화 기술사적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이라 하겠다.

사실 골룸이나 킹콩이 보여준 인간을 닮은 정도의 수준에서 인간 이상의 존재로써 침팬지를 연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순수한 표정의 아기 침팬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그의 연기에서 모션캡처는 단순히 연기자들의 분장술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시각 효과의 기술이 지닌 잠재력을 이해하고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영화의 사실성에 연기를 접합시키려 노력한 배우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비판하는 대상으로 삼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유인원 연기를 해내야 하는 그로선 단순히 침팬지의 흉내 정도가 아닌 미묘한 교감의 감정선을 표현해야 했고 때로는 인간과의 대립에서는 단호함의 비장미까지 그려내야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은 이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 다시 말해 슈트에 가려진 연기자로서의 앤디 서키스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기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오히려 제임스 프랭코(윌 로드맨 역)를 비롯한 상대역들의 연기가 더 왜소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평자들은 서키스의 연기를 목소리 재현 배우, 감정을 불어넣은 배우, 동작한 배우 등 기술의존에 덧 씌워진 단순 행동정도로 그를 평가한다. 그러나 서키스에게 있어 모션 캡처라는 기술의 발전은 다른 누군가를 재현하려는 배우의 오랜 의무를 실현시킬 뿐이다. 그것은 연기자가 캐릭터를 만나는 접근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보이는 캐릭터의 연기는 전통적 의미의 순수 연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의상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전문가와 같은 디자이너 외에도 애니메이션 혹은 CG 시스템과 기술자들의 참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실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의 진화는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한다. 완벽한 CG기술에도 한계가 있는데 그것이 연기다. 쉽게 이야기하면 생명력인데 그것은 어떻게든 캐릭터가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일루션이다. 연기의 기술도 모방이라는 큰 틀에서 그 양식이나 기술이 다양하게 변해온 건 사실이다. 사실주의의 등장과 이전 비사실주의 연기의 차이, 그리고 시적 상징성을 지닌 근대 사실주의 연기와 극사실주의의 차이, 그리고 아직도 연극과 영화에 있어 연기는 많은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기술의 발전도 한몫을 하는데, 거기에는 분장의 발전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과거 재현의 한계는 연극적 상상력으로 채워졌는데 분장의 발전을 통해 더 사실적인 재현은 연기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이제는 모션 캡처인데 그 기술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CG정도의 기술로 폄훼할 것인가는 인식하고 있는 대상들, 즉 관객의 몫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서키스는 2011년 런던 시각효과 관련 업체이자 교육기관인 The Imaginarium Studio를 설립한다. 한 가지 분야에서 오랜 기간 자신의 독보적인 연기 영역을 만들어가는 인물 앤디 서키스. 그에게서 연기가 수련의 예술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모션 캡처는 배우가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연주할 수 있다." <호빗>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진은 다음이미지에서 캡처함.

2018.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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