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는?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
우리 시대 최고 배우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성이 좋아야 하는가? 얼굴이 잘생겨야 하고,
목소리는 꿀 성대를 가져야 하는가?
지적이어야 하는가? 감각적이어야 하는가?
사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선호할 때는 객관적 기준보다 개인적 선호 기준을 따른다.
그것이 취향인데 어디까지나 개인적 선호기준이다.
그렇다면 업으로써 배우의 보편적 미학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든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을 수 있겠다.
가령 발성 상태, 신체의 훈련정도, 그리고 외모와 감각, 연기에 대한 철학과 방법론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을 것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훌륭한 배우, 최고의 광대는 이야기꾼이라 생각한다.
관객에게 어떤 주제와 의도를 훈련된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것을 이해하고 호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그 모든 것이 광대, 배우가 지녀야 될 덕목이라 생각한다. 즉 최고의 광대는 스토리텔러다.
우리 전통예능에서도 배우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조선 말기의 판소리 이론을 집대성한 신재효의 광대가가 그러하다.
그는 광대가를 통해 판소리 광대에 대한 미학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형식이 비평문이나 보고서가 아닌 *단가의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는 점이다.
예술이론을 예술로 풀어 표현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판소리 비평을 판소리로 한다. 멋지지 않은가?
풍류가 그대로 묻어있다.
쉽게 말하면 음악비평을 음악으로, 오페라 비평을 오페라로 하는 것이다.
*단가(短歌)란,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분량의 판소리를 말한다.
‘허두가(虛頭歌)’로도 불리는 이 단가는 당시 명창(광대)들의 특색을 비평하며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한 조건을 서술하였다. 역대의 명창(광대)들을 중국의 문장가들과 비교하는데, 송흥록(宋興祿)은 이태백(李太白)에,
모흥갑(牟興甲)은 두자미(杜子美)에, 권사인(權士人)은 한퇴지(韓退之)에, 신만엽(申萬葉)은 두목지(杜牧之)… 등에 각각 비유하고 있다.
이어지는 사설로 광대가 갖춰야 할 요소를 제시하는데, 인물․사설(辭說)․목청․너름새의 네 가지를 제시하며
훌륭한 광대가 될 수 있는 배우론을 사설로 읊었다. 이 자료는 음악적으로나 국문학적으로 귀중한 자료로
판소리학회를 비롯하여 국문학, 공연학, 연극학 등에서 전통연희 연구의 중요 단서가 된다.
총 70여 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판소리 광대에 대한 미학적 이론을 제시한 유일한 자료다.
광대가의 기술연대는 불명확하지만 학자들은 신재효의 만년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사는 <도리화가>와 더불어 신재효의 판소리이론을 정리한 가사로 내용상 네 부분으로 분류되어 있다.
다음은 판소리 단가 ‘광대가’ 중에서 광대치례 부분이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지차 득음이요
그 지차 놀음새라 놀음새라 하는 것이
구성끼고 맵시있고 경각의 천태만상
위선위귀 천만변화 좌상의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이 구성 이 맵시가 어찌 아니 어려우리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률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뚠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인물은 천생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
원원한 이 속판이 소리하는 법례로다
[광대가] 중에서 광대치례 부분
‘광대치례’에서 신재효는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조건, 인물치례, 사설치례, 득음(得音), 너름새를 순차별로 나열하며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네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치례’에 의하면 광대는 태어날 때부터 광대로 태어나야 한다 말한다. 그것은 인품이나 기품, 그리고 외모가 태생적으로 배우에 맞게 태어나야 되는 불변의 가치다.
‘사설치례’에서는 광대는 연기의 소재가 되는 극적 문학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토리텔러로써 광대의 시어 구사능력과 다양한 이야기 소재의 배열 능력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암송과 해석 능력이 요구된다.
서사를 풀어가는 광대에게 사설치레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그 가운데는 후원자(양반이나 아전)가 요구하는 사설이 덧대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본다.
쉽게 말하면 광대는 자신이 준비한 기본 바탕 위에 잔치판의 성격과 잔치를 주최한 사람이 평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추가하여 이야기 구조를 즉흥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것을 재편한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문학적 능력을 보유했어야 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득음’인데, 그것은 지고한 소리를 찾으려는 광대의 美의 이데아를 제시한다.
음악의 이해와 작곡 능력은 기본이고, 기교가 아닌 몸 전체를 통해 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진실성이 요구됨을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대목마다의 다양한 발성법을 터득해야 한다 제시한다.
마지막이 ‘너름새’인데, 그것은 판소리 사설의 극적 내용을 노래, 말, 몸짓으로 풀어내는 일종의 연기에 해당한다. 노릇하는 것 달리 말하면 미미크리라 할 수 있으며, 창과 사설의 과정의 단조로움을 넉살 좋은 연기를 통해 관객의 호응을 얻어내는 요소다. 일종의 비장과 골계로 청중을 사로잡고 예술적 쾌감을 전달한다는 의미인데, 그러기 위해선 판을 짜가는 기교와 관객의 반응을 읽어내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이 네 가지의 요소를 정리하자면, 인물치례는 선천적인 요소, 그리고 사설치레는 문학적 공부, 그리고 득음은 예술적 지향점을 향한 수련, 마지막으로 너름새는 묘사와 재주를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너름새를 마지막에 둔 것, 그리고 인물치례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제시된 점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공부와 수련이 배우의 필수 요소로 제시된 점도 되새김하여 봐야 할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배우는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광대다. 그리고 문학과 음악성을 수련하며 우수한 광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적 소양을 우선으로 둔 것이 득음하는 것보다 더 우선된다는 점에서 난 기본적으로 광대는 스토리텔러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소재를 이해하고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배치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맞다 이야기 소재가 있어야 광대의 존재가 성립된다.
그리고 사설 다음으로 제시된 게 득음인데 그것은 이왕이면 좋은 소리, 적절한 소리를 찾아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연을 하는 우리도 경우에 따라 성악 발성을, 뮤지컬 발성을, 가성과 미성을 등 다양한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상황에 마주칠 때가 많다. 대극장, 소극장의 발성이 다르고 관객과의 가청거리에 따라, 그리고 영화나 방송 등 매체적 특성에 따라 발성의 방식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발성에 대한 고민과 수련은 배우에게 중요한 수련 요소가 된다.
마지막이 너름샌데, 이걸 쉽게 말하면 애드리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너름새는 그거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재현, 미미크리로 봐야 할 것이다. 인물의 인물다음, 희극과 비극의 연기술, 그리고 상황에 맞게 관객의 반응에 순간순간 대응하는 즉흥연기 등이 그러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비극의 6가지 요소를 제시하였는데, 그는 이야기 뼈대가 되는 플롯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리고 인물의 성격과 문체, 그리고 주제성을 담은 사상을 중요시하고 장경(볼거리)과 노래를 낮게 평가했다. 결국 이야기의 전달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본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동서를 막론하고 광대는 스토리텔러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광대가의 배우론을 통해 난 최고의 배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려 한다.
우선, 태생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광대로써 갖춰야 할 덕목으로 문학적 소양을 키울 것, 그리고 오랜 수련을 통해 지고의 소리성을 찾고 신체적 훈련을 통해 표현력을 길러야 할 것, 마지막으로 관객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는 감각을 길러내는 것 등의 요소로 말이다. 결국 배우는 이야깃거리,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재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제언에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왜냐면 사실주의 연기방식에 입각해서 보면 말이다. 방식을 논하는 게 아니다. 이야기 전달자, 스토리텔러로써 배우가 갖춰야 할 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스토리텔러라는 것, 판소리라는 것이 서사 중심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모방에 근거한 사실주의 연기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해해 주었음 한다.
2018.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