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카딸이 엄마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조카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살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진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언니, 조카의 엄마는 여전히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딸을 위해 끊임없이 손주들을 돌봐주고, 어린 시절엔 밥을 먹이겠다며 아이를 쫓아다니던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조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말들이 존재했다.
나는 조카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를 만나지 않아도 돼.”
요즘은 가족 간의 단절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치열하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의무와 책임만을 요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부모든 자식이든, 친구든, 어느 관계에서든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관계는 결국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서야 한다.
나 역시 결심했다.
업무상의 실수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가 아니라면,
이유 없이 나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사람은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에까지 배려를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를 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친 나를 지키는 일이다.
얼마 전에 아들이 나와의 거리 두기를 요구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자 우호적인 관계라고 믿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상처 주려는 의도는 없었어. 이해하고 좋게 지내자.”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런 태도가 결국 관계를 더 왜곡시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의 요구를 존중하기로 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손을 내밀어도 좋다.”
그 한마디만 남기고, 몇 주째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의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잠시 멀어지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만, 이 자세가 온전히 옳다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부정적인 관계를 끊으며 나를 지키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불안의 파도가 일렁인다.
삶은 늘 '정'과 '반'의 충돌 속에서 길을 찾아간다.
이제는 극단을 넘어서는 ‘합’의 지혜가 필요하다.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길.
그 균형의 답을 찾아가는 일이
지금 내가 마주한 인생의 다음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