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사고로 차를 폐차한 뒤,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걷다가 낮게 솟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고, 손바닥에 철심 세 개를 박는 수술을 받았다.
조심한다고 주의를 기울여도 물건을 놓쳐 떨어뜨리고,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컵을 쳐서 물을 쏟는다.
내 의지를 거스르는 몸의 실수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유발한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타이핑도 부정확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정작 나의 능력은 줄어들고 있는 건가?
이상하게도, 그렇게 우려스럽지는 않다.
막연한 예감 같은 것이다. 이런 기능 저하와 노화가 내 꿈을 막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감싸고 있다.
왜일까?
아마도,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나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생겼다.
나를 가로막는 장애들이 이제는 사소한 방해물로 보인다.
'에이징 커브(Aging Curve)'는 원래 스포츠 분석이나 인간의 생산성 연구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나 능력의 효율이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곡선을 말한다.
젊을 때는 1시간이면 끝내던 일을, 이제는 2시간을 들여야 한다.
재빠르게 처리하던 일들을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손끝의 속도도, 걸음의 속도도 조금씩 늦어진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예전 같지 않네. 이러다 뒤처지는 거 아닐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뒤처진다는 건 같은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다른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전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면, 그저 두 배의 시간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속도가 늦어질 때, 우리는 종종 '퇴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조율의 시기다.
신체 능력은 스무 살을 지나면서 서서히 떨어지지만,
전략과 판단력, 경험의 깊이는 오히려 올라간다.
즉, 능력의 총합은 단순히 '속도'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에이징 커브는 피할 수 없는 곡선이지만, 그 곡선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가는 법은 배울 수 있다.
조급하지 않게, 비교하지 않고, 오늘도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젊은 시절의 속도가 아니라,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조금 더 느린 리듬으로, 조금 더 깊은숨으로, 나는 여전히 나의 곡선을 따라간다.
나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내 소중한 시간과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 결심이야말로,
느려진 내 삶의 리듬에서 배우게 된 미학이다.
결국 '느려짐'은 나를 뒤처지게 만드는 결핍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내가 나를 위한다면,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