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좋은 몫을 시기하지 않기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by 함물AVI

마르다의 하소연


마르다의 집에 예수님과 손님들이 찾아왔다.

언니 마르다는 분주히 손님을 대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 앉아 말씀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불평했다.

"예수님, 마리아도 저를 도와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저만 힘듭니다. 이건 불공평합니다."


마르다의 하소연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얘야, 마리아는 자기에게 좋은 편을 택했다. 마리아는 그것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문득, 깨달았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불공정과 부당한 결과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상사가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동료가 더티 플레이로 좋은 자리와 승진을 가져갔다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정말 나는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무너진 논리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그동안 논리는 이랬다.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다. 동료는 일보다는 상사와 골프를 치고, 상사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고, 기분 좋은 말을 건네며 비위를 맞추는데 더 열심이었다. 내가런 더티 플레이어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은가? ”


그런데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쳤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는 것 말고, 나를 위해, 좋은 자리와 승진을 위해 무엇을 더 했는가?

상사에게 “내가 무엇을 원한다." 정도의 의사표시조차 적극적으로 한 적이 없다. 그저 조직에서 알아서 공정하게 평가해 주기를 기대하였을 뿐.

그런데 정작 ‘나에게 좋은 평가를 해야 공정하다’는
그 생각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좋은 몫을 선택했고, 놓치지 않았다.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을 홍보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기회를 잡았다.


나는 그들을 ‘게으르다’고 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일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 열심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직장에서도 감정과 관계, 온도를 가지고 산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호감과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무뚝뚝하고 정이 안 가는 사람을 일을 잘한다, 또는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좋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을 조금 못해도 다정한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에 마음을 연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공정하다.


세상은 이미 답을 주고 있었다

세상은 오래전부터 이 말들을 반복해 왔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간절히 구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세상.

이 얼마나 공정한가.


나는 그들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그들만큼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간절히 바라지 않았던 남의 몫을 그저 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간절히 원하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 사람,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진짜 공정한 일이다.

단, 그것이 불법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탓하지 말자.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뛰는 삶을 살자.


" 세상은 불공정한 게 아니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