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이별법
얼마 전, 오랜 친구들 모임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그들은 한때 나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임에 나가면 듣고 싶지 않은 소식 - 사촌이 땅을 샀다는 이야기 같은 - 을 들어야 했고,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동참해야 했고, 그 속에서 피로감만 쌓였다. 과거보다 커져버린 이질감 때문에, 심지어는 소외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이 문제가 그들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내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세월의 탓이다. 사람은 변하고, 멀리 떨어져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 예전 모습 그대로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내 인생의 30대와 40대를 함께 보낸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된 연인처럼, 의무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 관계를 끊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옛정, 인간으로서의 도리, 변심에 대한 자책과 타인의 비난. 수많은 마음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결국 나는 그들과의 시간을 추억 속에 묻어두고, 이제 내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해 쓰기로 했다.
탈퇴 의사를 밝히는 메시지를 쓰고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몇 주 전에서야 간신히 ‘보내기’를 눌렀다.
그 후로 아무 반응이 없길래,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모임 회장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생각이 정리가 안 된다.”
아마도 내 결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어젯밤 꿈에서 회사 동료 여섯 명과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를 비난하며 모임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꿈에서 깨면 대부분의 이야기는 증발해 버린다-억울한 내용이었다. 다른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그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순식간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꿈속에서 느낀 감정은 절망과 불안이었다.
나는 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고 다짐해 왔다. 하지만 막상 고립을 경험하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현실에서라면 훨씬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아마 모임 회장님도 내 탈퇴 선언을 받았을 때, 꿈속의 나처럼 황당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별은 떠나는 사람에게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용기와 단호함이 필요하듯, 남겨진 이들에게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역지사지해 보면, 내가 오랜 시간 숙려 하며 헤어질 결심을 한 것처럼, 나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 역시 쉽지 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의 감정도 언제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조율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 맞춰가는 즐거움을 나눌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이 오히려 고통이 된다면 이별을 자책하거나 그 결정을 하였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다양한 관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자주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렇기에 어떤 이별이든 감정을 낭비하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헤어질 결심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며, 관련된 모두에게 고통과 용기를 요구한다. 이 고통스러운 결정을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역지사지 및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별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관계 속의 균형을 맞추고 성장하는 기회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