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향해
나에게도 깊은 우울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긴 터널과도 같은 그 시간을 벗어난 것은 고작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10년 이상을,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삶이 멈춰 있었다. 작년에야 비로소 힘을 내어 책상 위에 "2024 다시 미소"라고 적어놓고 매일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40대 중반까지 나는 근거 있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름대로는 단단한 근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의 이유가 되었던 근거들이 무너지면서, 나는 하염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 추락은 긴 터널과 같았고, 깊은 늪과 같았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내 심장은 차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와 같았고, 언제든 꾹 누르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그 우울했던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고,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춤도 추지 않았다. 그저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했고, 직장 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전부였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유지했지만, 내 심장은 언제나 물먹은 스펀지마냥 축축이 젖어 있었고, 그 슬픔과 우울감은 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늙었다.
나에게는 꿈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나의 자부심, 행복의 근거가 되었던 그것. 그 상실이 치유된다면 우울도 끝나는 거였지만, 그 근거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고 나는 오랫동안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남-정확히는 남편-이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만 치유되는 일이었는데, 그는 그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다.)
긴 터널과 같았고, 깊은 늪과 같았던 생활에서 탈피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강력했다. 나는 나의 삶을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고, 터지기 직전에야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임에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아직은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내가 그 우울감의 시기에 어떤 감정 상태였고,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도 분명히 끝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어쨌든 나는 작년부터 기분이 전환되면서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있다.
물론, 나에게 상실감을 주었던 문제가 치유된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내가 세상을 사는 자세,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이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마음뿐이었다.
타인에게 바라는 것... 그런 기대를 내려놓았다.
*** 그저 내가 할 일만 할 뿐, 타인에게는 어느 것도 바라지 않기, 서로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규범, 배려에 대한 고정관념 버리기, 가족이든. 친구든, 그 누구에게든.***
내 마음만 바꿨을 뿐인데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거의 회복된 듯하다.
내가 빠져봤던 깊은 슬픔과 좌절의 기억은, 인간이 얼마만큼 슬픔에 빠질 수 있는지, 절망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억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 다시 웃게 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당신도 우울증을 끝낼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우울증의 늪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이 말만을 전하고 싶다.
"조금만 힘내자. 조금 더 버티자. Smil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