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 그리고 결에 관하여
부모들은 늘 걱정한다. 자식이 나쁜 친구들에게 물들어 나쁜 길로 빠질까 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도 있고,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나쁜 사람 옆에 있으면, 성격이 약한 쪽이 강한 쪽에 이끌려 나쁜 행동에 동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정서적으로는 절대 물들지 않는다고.
사람이라는 것은 '결'이라는 게 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직물의 결처럼, 각자의 고유한 패턴이 있는 것이다. 결이 다른 사람과는 섞일 수 없다.
물론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이나 학습에 의해 그 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표면적인 변화일 뿐,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나는 나의 결과 다른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내 성격이 강한 탓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참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싫은 공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탈출해야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관계에서는 하루빨리 그 관계를 단절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결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다 각자의 성품이 있고 결이 있다.
그 결을 역행해서, 거슬러서, 다른 사람에게 맞춰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삶이라면 분명 불행할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제 어떤 어린 팀장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 내 입장에서 그 사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렸다'. 하지만 그 틀림조차 존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불쾌한 감정은 아침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문득, 그 팀장이 아닌 다른 직원들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다.
다른 직원들은 자신의 결을 숨기고 있어서 그들이 나와 결이 같은지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결을 숨긴다는 것' 자체가 그 팀장과는 다른 결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모범적이고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다. 어린 팀장은 그 반대였다. 책임감 없고, 성실하지 않고, 공감 능력이 없고, 무엇보다도 예의가 없다.
그래서 잠깐 걱정했다. 그 팀장의 무책임한 태도가 다른 선량한 직원들에게 물을 들일까?
그리고 곧 깨달았다.
겉으로 어울린다고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공감 능력이 있고 사회성이 있는 사람들은 결이 다른 사람과도 갈등 없이 지낸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어울리고 섞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기본적인 결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사람과 오랫동안 교류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면, 자신의 결이 아닌 다른 결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본성, 그 결을 기억해 낸다면 아마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거나, 원래의 결로 환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물들지 않는다고.
유유상종이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타인에게 물들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결을 따라 흐르고,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우리가 진정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이다.
나는 오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불쾌함을 느끼지 않으려 애쓴다. 그 감정에 신경을 쓰는 일조차 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그 팀장과 깊이 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겠다는 예감을 하면서,
나조차도 나의 결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완전히 내재화하기에는 나는 아직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하다.
아직은 수련이 '많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