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위로 높이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중간'이라는 경계선 근처에서 머물렀다. 어릴 적엔 우리 집이 중산층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가난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중산층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어릴 적 착각했던 것처럼 중산층이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나는 중간 이상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래로는 깊이 내려가 본 경험이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할 만큼, 감정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가본 적이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위로는 높이 오르지 못했지만, 아래로는 많이 추락해 보았다는 역설적인 인생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인생은 흥망성쇠, 오르락 내리락의 반복이다. 좋은 일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고, 나쁜 일도 그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반드시 끝은 있었다. 나는 이 불확실한 상태가 인생에 늘 존재함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큰 두려움을 갖지 않는 편이다. 바닥을 본 경험이 삶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태도가 있었다.
"내가 성공하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사랑받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갈망하는 성공과 사랑을, 나는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그 결과는 적당한 삶이었다. 적당히 사랑받았고, 적당히 성공했다. 나는 내 인생에 작은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만 안주하며 살았다.
왜 나는 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상상해 본다. 내가 하늘로 높이, 또 높이 올라가 창공에서 마치 풍선처럼 터져버리는 모습을.
아, 무섭다.
그 반대도 상상해본다. 아래로 아래로 추락해 땅속에 완전히 잠겨버리는 모습을.
어? 그건 감당할 만하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상하거나, 추락했을 때 내가 맞이하는 것은 삶의 종말, 죽음일진대
나는 땅속으로 잠기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창공에서 터져 죽는 것은 두려워한다.
극한의 고통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왜 나는 상위의 행복과 성공을 두려워했던 걸까? 그것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 스스로 내 삶의 울타리를 깨고 나가야 마주할 수 있는 낯선 인생이기 때문일까?
이제는 깨닫는다. 내가 나를 가둔 울타리를 깰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내 삶의 스펙트럼이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펼쳐지든, 그 모든 순간을 내 인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누려야 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그 모든 시간이 내 것이 아닌 때가 없다.
내가 바랐던 '적당함'은 사실 나를 스스로 제한한 울타리였을 뿐이다.
"구하면 얻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리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왜 나는 아주 귀하고 좋은 것을 바라고 꿈꾸는 것을 주저했을까?
그것은 굼벵이가 매미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을 때, 거미줄에 걸려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진정한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성공과 행복을 누릴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오랫동안 '적당함'에 안주해 온 삶의 관성이거나, 내가 감히 가져서는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설정한 내면의 한계였을 것이다.
Why not me?
당당히 말하자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나에게도 누릴 자격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성공과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내가 추락을 감당했듯, 비상 역시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 이젠 그 창공에서 터져버릴지언정,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
내 삶의 모든 가능성, 그 풍부한 스펙트럼을 이제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