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쉽게도 내 눈물샘은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지만 말이다.
억지로라도 감정을 쏟아낼 구실이 필요했던 걸까.
알고리즘이 이끈 것인지,
나의 결핍이 이끈 것인지 모를
'만약에 우리'라는 영화 광고가 자꾸 눈에 밟혔다.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영화라는 후기에 홀린 듯 이끌려 영화관으로 향했다.
내심 기대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꽉 막힌 감정의 둑이 터져 시원하게 울 수 있기를.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기대했던 줄줄 흐르는 눈물은 없었다.
대신 그보다 더 무거운, 형용할 수 없는 먹먹함만이 가슴 한복판에 얹혀 있었다.
그 먹먹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넬의 '마음을 잃다'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이란 사람 정말 몸서리 처질정도로 끔찍하네요
언제까지 내 안에서 그렇게 살아 숨 쉬고 있을 건가요 언제 죽어 줄 생각인가요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이 흘러서 그렇게 당신도 함께 흘러가야 되는데
정말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사랑에, 아니 인생에 만약은 없다지만 가끔은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만약 그때 우리가 달랐더라면,
만약 내 안에 살고 있는 그대에게 "언제 죽어 줄 생각이냐"는
가슴 저린 독백 대신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었을까.
왜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늘 준비가 덜 된 시점에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조금 더 성숙했을 때,
나의 계절이 조금 더 온화했을 때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대다수가 이 노래에 공감하는 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누군가'를 품은 채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내 목숨을 잃어도 아깝지 않다 믿었던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람을 잃고 나니 주인을 잃은 마음만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 노래의 마지막 음절이 끝날 때쯤,
나를 포함해 마음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이
비로소 그 무거운 기억에서 놓여나 각자의 마음을 온전히 되찾기를,
그리하여 평안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