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일리치의 죽음 | 삶의 끝에서, 죽음의 시작에서

by 함니

새해가 되면 우리는 보통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품고 시작한다.

승진, 다이어트, 재테크, 그리고 행복.


이런 키워드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

우리가 올해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죽음을 미리 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하여 2026년 독서모임의 첫 지정 도서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선정했다.


꼬박 사흘에 걸친 끔찍한 고통과 죽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그는 일순간 섬뜩해졌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그는 평생 이것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 절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여겨 왔다.

- 이반일리치의 죽음 내용 중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기 전 사흘 동안 괴성을 지르며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는 그의 몸부림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에서 과연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죽음은 곧 삶의 일부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받아들인다고 해서 죽음이 더 느리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면,

우리는 죽음에 도달하는 그 과정들을 훨씬 더 '감도 높게'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 말이 공감되지 않는다면 당장 일주일 뒤,

혹은 내일 바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본인이 무엇을 할지 떠올려 보자.


그때 당신이 선택한 그 일이,

아마도 당신이 평생 진심으로 마음 쓰고 싶어 했던 본질 중 하나일 것이다.


삶의 끝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반 일리치도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몸부림은 더 처절하게 다가오고,

우리로 하여금 내 삶의 끝에는 무엇이 남아있을지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2026년의 끝에 모두가 건강히 한 해를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다만, 그 마무리의 순간에 '죽어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감도 높은 삶을 살았다'라고 자부할 수 있기를.


이 정도로 거창하지 않더라도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