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by 함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명한 에세이 중 하나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읽고, 같이 달리며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감정이 무엇일지

떠올려보는 체험형 독서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런 모임을 진행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나의 치열했던 루틴이 큰 몫을 차지했다.


파주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달려가 망원동으로 향했다.


독서모임을 마치고 나면 밤 10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망원 한강에서 러닝을 마친 뒤에야 하루가 일단락됐다.


시계가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다시 어두컴컴한 자유로의 끝자락까지 운전해

회사 기숙사에 도착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기 일쑤였다.


피곤이 발끝까지 내려앉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던 그 시간들이


요즘은 왜 이리도 머나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한편으론 타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이후

한동안 마라톤에 대한 권태기, 이른바 러너스 블루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권태기도 삶의, 러너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달리고 있음을 알린다.


목적의식이 너무 강해도

혹은, 그 목적을 실제로 이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발을 내디딜 뿐이다.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기대하며 살기에는

그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마주할 공허함이 너무나 크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 다다랐을 때,


하루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카페 운영이라는 새로운 트랙 위에 서 있는 지금,

훗날 내게도 이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나도 나 자신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진정한 러너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