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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Apr 30. 2017

풀꽃도 꽃이다

조정래 장편소설

참교육이란 무엇일까?

어두운 시대일수록 그 희망은 먼 미래에 있다.

그 희망의 미래를 위해 심고 가꾸는 일이 교육이다.


   오늘 조국의 교육현상을 바라보며 장탄식으로 쓰여진 책 [풀꽃도 꽃이다]에서 작가는 주인공 강교민을 통해 우리 모두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놓는다. 강교민은 학생들에게 교육가 닐의 말을 받아 적으라며 칠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공부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은 그 누구에게나 한가지 이상의 능력을 부여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이 인간의 모든 능력도 평등하고 공평하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잘못은 시험 점수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규정하고 속단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한평생 신명나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귀하고 천한 직업은 없다.

도둑질과 사기가 아닌 한 그 어떤 직업이든 소중하고 존귀하다.

성공한 인생이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한평생 열심히 즐겁게 해나가고, 그리고 사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노년을 맞는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데 그 연극은 극작가도, 연출가도,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면서, 단 1회의 공연일 뿐이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교육가 닐의 말을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면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도 쏟아 놓고 있다. 이종사촌 동생 이소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 문제, 그건 재벌 통제와 함께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2대 문젯거리야. 비정규직이 해마다 늘어나 이제 정규직과 거의 같은 수로, 전체 노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어. 이건 절대로 말이 안 되는 거대한 사회적 사건이야. 자아 봐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절반이나 그 이하로 받는 불공평한 사태가 비정규직이라는 것 아니냐. 그런 말이 안 되는 제도가 언제부터 생긴 것이냐! 1997년 김영삼 정권 때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불린 IMF 사태가 몰아닥친 때부터 아니냐.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사태 앞에서 긴급 처방으로 등장한 것이 비정규직이야. 나라를 구하고, 모두가 살아나야 했으니까 노동자도 합의하고, 국민도 동의한 것이었어. 그건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급한 사태가 수습되면 원점으로 환원한다는 대전제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때 전 국민의 마음속에는, 6•25로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린 절망 속에서도 경제 건설을 이루어냈는데 그까짓 것, 허리끈 졸라매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결의와 일체감이 있었던 거야. ‘통치의 실수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해괴한 말을 남기고 청와대에서 물러난 김영삼은 무슨 바쁜 볼일 있다고 일본을 가려다가 공항에서 온몸에 달걀 폭탄을 뒤집어쓰고 되돌아서는 국민적 분노를 샀고,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을 하기도 전에 IMF 사태를 수습한다고 국제적 투기꾼으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를 만나느라고 요란했어. 그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들 부도는 줄을 잇고, 실업자들은 산사태 나듯이 쏟아지면서 전에 듣도 보도 못한 노숙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어. 그런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국제통화기금 IMF는 우리를 구해준다고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국제 금리보다 세 배나 더 많은 6.85퍼센트를 내라고 강요했고, 끝내 관철시켰어. 그 당시 미국 은행들의 이자나 국제 금리도 2퍼센트 정도인 상황이었어. 그러니까 IMF는 빈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혈관에다 바늘을 꽂고 인정사정없이 피를 뽑아 가는 국제적 흡혈귀였던 거야. 그건 국제적으로 전무후무한 살인적 고리대금업이었어. 그때 IMF를 장악하고 있던 것이 미국과 일본의 자본이었지. 우리나라와 군사적 우방이라고 하는 두 나라가 돈 앞에서 한 짓이 그래. 그래 놓고 15년이 지난 후에 IMF 전 총재 칸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난 한국의 사태 때 IMF의 고금리 정책은 너무 가혹했다’고 인정했어. 뻔뻔스럽고 낯 두꺼운 행태지. 어쨌든 그때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하며 몸부림쳤어. 그래서 김대중 정권은 2년 반 만에 ‘IMF 졸업’을 선언했어. 그러면 그 선언과 함께 즉시 원점으로 되돌려야 할 게 뭐야. 비정규직 폐지와 동시에 정규직 환원이지. 그런데 그 본질적으로 핵심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김대중 정권은 ‘지나친 내핍이 경제 회복을 더디게 한다. IMF 사태는 완전히 극복했으니 이번 추석에는 모두 선물을 많이 주고받자’는 식으로 정치 선전을 하기에만 바빴지. 그 과장된 정치쇼의 무책임 속에서 그 정권은 끝나고 노무현 정권이 시작되었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차량의 과잉 경호로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되니까 대통령 차도 일반 신호를 지키는 게 좋다’ 이런 내용의 발언을 할 정도로 그는 민주주의의 처녀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어. 그래서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환원 추진이었지. 그런데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경제 세력들과 보수 언론의 전면적 방해에 부딪쳤던 그는 그때보다 더 강한 적들을 만나게 되었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환원은 바로 대기업 집단인 재벌들의 재산을 축나게 하는 것이었고, 재벌 회사들의 광고로 언론 권좌를 누리고 있는 보수 언론들은 순식간에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됐어. 자본주의국가에서 그 두 세력의 일치단결은 대통령의 권한을 압도하는 거야. 대통령은 그 저항에 맞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절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화 한다’는 것이었어. 그랬더니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기업들마다 잽싸게 한 짓이 1년 10개월, 11개월 된 비정규직들을 몰아내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2년이 못 되게 재계약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어. 이런 기발한 꼼수를 짜내는 게 누군지 알아? 속칭 일류 대학 상대와 법대를 나오신 분들이야. 그런 악랄한 술수 앞에서 속수무책인 채 노무현 정권은 끝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지. 이명박은 애초에 비정규직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고, 재벌 기업에서 입신출세한 인물답게 대뜸 ‘기업 감세’를 들고 나왔어. 대기업들에게 감세를 해주면 그 손을 재투자해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고, 그 일자리 창출로 청년 실업이 해결되는 동시에 경제 활성화가 이루어진다는 아주 그럴듯한 명분이었지. 그런데 어떻게 됐지? 대기업들은 감세 받아 누워서 벌어들인 그 손을 재투자하지 않고 계속 차곡차곡 쌓아두면서 더욱더 부자가 되어갔고, 그 신종 정경유착 속에서 이명박 정권은 끝났어. 그 대기업 감세란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한 일이 없는, 국제 조세 기류에도 정반대로 역행하는 국제적 망신이었던 거야. 그런데 정권이 새로 바뀌었지만 비정규직 문제와 기업 감세는 이명박 정권 때 그대로 답습하며 오늘에 이르렀어. 그러면서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 노동자들의 절반에 육박했고, 기업들이 감세로 축적해 재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돈은 몇 개월 전에 벌써 700조였어. 그 귀 아프게 들어온 말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국가적 위기를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 위기 상황이야. 국민 전체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 국가 전체의 평온한 경영을 위해서 더 이상 대기업을 과잉보호하는 경제정책은 없어져야 해.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과감히 청산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기업과 재벌 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감시해야 돼. 우리 모두가 원하고 되기 바라는 선진국들 수준으로 엄정하게 세금을 물리면서 말야. 그러면 비정규직들은 자연스럽게 정규직으로 환원되고, 그렇게 되면 IMF 사태로 무너진 중산층이 다시 복원되면서 경제는 생기 넘치게 활성화의 길로 달려가게 되어 있어.”    


   강교민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학습기계적인 교사가 아니었고 제자들의 삶을 보듬는 진정한 스승이기를 바라는 참교사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며 아르바이트에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아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임금을 받아내 주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잘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여 그에 적절한 가르침을 베풀기도 한다. 참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교사들과 구태의연하게 자기 자신의 안위만 돌보려하는 구시대의 작태로 일관하는 고위 교사들과의 날선 대립들을 통해 교육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어두움이 얼마나 크며 이 어두움을 걷어내고 광명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자는 적고 적당히 타협하며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많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세상을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가는 이 세대의 교육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함께 고쳐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인공 강교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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