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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Feb 17. 2018

성령 받으라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주신 것이다.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여 오시기 전, 부활자로서 성령이 오실 길을 마련하시고,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신 말씀이다. 성령이 오실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것이다. 부활자의 전권으로 성령을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순절 성령강림절에 교회에 임하여 오신 성령은 한 번도 교회를 떠나신 적이 없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으면 동시적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성령으로가 아니면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믿음은 곧 성령 받음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강단에서 [성령을 받으라]고 선포한다. 이게 옳은 것인가? [성령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령은 기도해서 받아 가지는 능력의 도구가 아니다. 
성령은 개인이 담지할 수 있는 특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받아 가지는 소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생성되는 곳에 항상 말씀과 함께 성령의 역사가 수반된다.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사람들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 고백하게 하므로 교회를 이루게 한다. 이 일은 세상 끝날까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진행될 일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세상에 오실 수 있었고, 성령께서 오신 날은 교회의 생일이다. 그렇게 교회에 임하여 오신 성령은 한 번도 교회를 떠나가신 적이 없다. 세상 끝날까지 성령은 교회와 함께 하신다.

믿는 자 안에 성령이 임하여 다스리고 계시는데, 신자를 향하여 [성령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이미 와 계신 성령의 인도와 다스리심에 순복 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령 충만이란 성령의 인도와 주장하심을 따라 순복 하는 것이다. 여기서 충만이란 온전한 다스림의 영역 안에 머무름을 뜻한다. 물량의 충만이 아니다. 컵에 물이 가득 담기듯이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다. 성령의 다스림의 영역 안에 머무름으로 그 다스림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함인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은 아직 성령이 교회에 임하여 오시기 전의 일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절에 임하여 오신 성령은 교회를 떠나가시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신다. 그 성령을 받으라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와 주장하심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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