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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목 Aug 12. 2024

약상자를 열어보다.

돌봄 에세이 3

  어르신, 저희 왔어요. 땀이 뻘뻘 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집으로 찾아가는 우리는 방문의료팀입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 약사와 함께 직접 집으로 찾아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로 의사와 한 팀이 되지만 필요에 따라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와 같이 재활 영역에서 한 팀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약사와 한 팀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방문의료 다학제팀이라고 합니다.     




  직접 찾아가는 케어 코디네이터로써 몇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집에 쌓인 약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진통소염제부터 파스각종 영양제까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약들이 쌓여 있어 난감했던 적이 참 많습니다. 오래 방치되다 보면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약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구의 약인지 몰라 알아보기 힘들기도 합니다. 먹고 있는 약만 잘 보관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약상자 열어보기

  약을 너무 많이 드시고 계시면서 정리가 잘 되지 않는 집들을 약사와 함께 이곳저곳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약을 잘 드시고 계신지 확인하기 위해서 서랍을 열어 보관 중이던 약을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까지 열어서 안약과 연고인슐린 주사까지 모두 다 모으니 정말 많은 약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약사는 복용 중인 약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현재 사용 중인 약과 복용을 중단한 약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복약 관리 리스트가 완성되고 약사는 맞춤형 복약지도와 상담을 친절하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약을 많이 드시고 계신 분에 약의 개수를 직접 세어보니 최대 30까지 복용하고 계셨습니다. 식사만큼이나 약도 많이 드시는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잘 보관 중일 것만 같았던 약들이 대부분 더 이상 쓸 수 없어 버려야 하는 약품도 많았습니다. 언제 처방 받았는지 모르는 약들이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영양제를 먹다가 맞지 않아 오래 방치되기도 했고, 파스와 연고의 경우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되기도 했었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약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면제나 안정제와 같이 주의가 필요한 약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잠이 오질 않는다는 분들이 참 많이 계셨는데 조금 더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계속해서 잠이 오질 않아 다른 동네 의원에서 다른 수면제를 처방받아온 약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약들이 서로 섞여 평소에 먹던 약들과 혼동해서 수면제와 같은 약을 복용하는 위험한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느 덧 일상에서 많은 약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만성질환이 있다면 잊지 않고 꼬박 꼬박 약을 잘 챙겨먹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약을 보관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더 중요한 숙제가 되었습니다. 무심코 아무렇게 버려진 약은 환경을 파괴하고, 더 이상 먹지 않는 약을 쌓아두다가 반려동물이나 어린 아이가 먹게 되어 큰일이 나기도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사용되는 약들이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통해 다제약물 대상자를 중심으로 약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약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문약료의 개입이 절실한데도 다제약물 대상자가 아니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아쉬운 현실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1인 가구와 고령인구의 증가로 지역사회에는 여러 가지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참 많이 계십니다. 건강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환경을 지키는 직접 찾아가는 약료 서비스가 제도적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전하게 믿고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돕는 약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전문가였습니다.





                                                                    이 글은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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