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나를 만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면서 소통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창 간호사라는 직업을 꿈꾸는 간호대학 시절, 의학드라마를 보면서 유창한 의학용어를 구사하며 시시때때로 상황이 변하는 것이 그저 흥미로웠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며 임상 현장에서 실력 있는 간호사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역동적이면서도 빠른 상황판단을 요구하는 응급 재난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많이 해왔던 것이 아닐까.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난 후에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술기 위주의 임상에 더 집중했었다.
하지만 지역사회 간호를 경험해 나가며 생각은 정말 달라졌다. 의료기관이 아닌 대상자의 집, 복지관, 시설 등의 다양한 현장을 만나면서 의료인보다는 비의료인들이 훨씬 많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의학용어나 전문용어 위주의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실 의료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통용되는 단어들로 이야기할 때는 무척 편리하다. 하지만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 노인, 아동, 장애인 등 다양하게 만나다 보면 내가 그동안 익혔던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숙제는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서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적합한 단어를 찾고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해야 소통하기 쉽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내가 경험했던 상황은 훨씬 어려웠다. 특히나 건강문제 목록을 작성하고 간호중재를 할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알려줘야 할 정보가 정말 많다. 복용 중인 약물부터 생활습관까지 정말 다양하다. 알려줘야 할 정보를 방대하지만 하나하나 설명하자고 하니, 이해하는 속도가 각자 다른 대상자들을 만나다 보면 개인적인 소진으로 다가왔다. 어쩌다 화가 나기도 했고 어떤 점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원인은 나에게서 찾아졌다. 상대방이 느끼기에 어렵게 설명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내용이 나에게 익숙할 뿐이지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생소한 단어와 생활방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들만 하다 보니 어색한 야이기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고혈압을 가진 노인의 반찬은 주로 염도가 높은 장이나 염장류의 반찬이 주로 많았는데 아무리 적게 드시라고 하며 나트륨을 설명해도 오랫동안 익힌 식습관과 서로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달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변화를 주어 짠 음식을 먹고 물이 많이 먹히니 그 물이 몸이 붓게 하고 혈압이 올라간다고 표현하니 내용이 훨씬 이해하기 좋았다. 어찌 보면 조금 다른 말이지만 이해하기 좋은 말로 되풀었을 때가 생활방식이나 식습관에 더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함께하고 있는 지원주택에서 입주민과 함께하면서 어떤 입주민이 내가 말을 할 때마다 두 손을 치며 '아, 안 들려'하는 행동을 했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 하며 스스로 위안을 했었지만 그런 행동이 반복되니 속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잔소리는 많이 했었는지 되짚어 보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쉽사리 해소할 수 있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아주 미미하지만 소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입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oo 씨는 어떨 때 안 들려라고 해요?"
그러자 그 입주민은 "소리를 시끄럽게 할 때요", "내가 하고 있는데 뭐라 그럴 때요"라고 했었다.
그랬다. 입주민은 시끄러운 고음의 말소리와 행동을 지적하는 말투가 싫어서 그런 행동을 했었던 것이다.
오히려 차분하게 말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등의 대안점을 함께 찾아가는 의사소통이 더 합당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먼저 상대에게 묻고 차분하게 여러 방법을 찾도록 노력했고 지금은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 자립을 위한 생활방식을 함께 공부해 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되돌아보면 나 또한 간호학생 시절 전공 수업이 쉽지 않은 않았던 것 같다.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우선 교과서에 필기만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전공책을 펼쳤을 때는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필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식은땀을 흘리곤 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도 생생하게 수업을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 부정맥 파트에서 세동을 치료하기 위해 제세동기를 사용하는데 "정신 차려 심장아! 하면서 충격을 준다"는 내용이 아직도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어렵기만 하고 낯선 내용들이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들은 곳곳 생활에 녹아 있다.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도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한다는 것은 간호를 받는 사람을 존중하고 함께 하겠다는 신뢰의 관계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