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에 능숙하기 바라는 나를 만나다.
나의 첫 근무지는 응급실이다.
교육 전까지 잠깐이나마 임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응급실 자리가 있다는 제안에 덜컥해보겠다고 해서 응급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간호사를 꿈꾸며 몇 가지 다짐한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심정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내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일해보자고 다짐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처음 심정지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이트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응급실 앞에서 사이렌을 몇 번 울리고 119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지금은 재난 핫라인으로 심정지 환자가 이송 중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그때는 응급실 앞에서 사이렌 소리로 위중증 환자가 도착했다는 싸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증 전용 침대를 앞으로 빼고 베개와 이불을 다른 침대로 치우고 침대 높이를 높이고 있었다.
도착한 심정지 환자는 신체가 아주 크고 40대 남성이었다. 그때는 내가 신규간호사였기 때문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도 몰라 그저 주어지는 데로 엑팅업무를 하기 바빴다. 나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응급카트에 물품을 준비하면서 간호사가 되고 첫 심폐소생술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생전용 침대에 옳겨지고 난 후 일사불란하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흉부압박이 시작되고 곧 이어지는 기관삽관술, 리듬을 확인하기 위한 장비가 부착되었다. 약속을 한 것 마냥 누구가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모습이 신규였던 시절에는 감탄하며 나도 빨리 익숙해지길 바랐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아쉽게도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가족들의 통곡도 함께 들려왔다. 임종을 했지만 응급실이라는 장소가 또 다른 응급 환자를 맞이해야 하기에 가족들에게는 충분한 작별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늘 아쉬운 점이 이 부분이다. 학부시절에는 임종 간호를 배우면서 가족들에게 충분한 인사를 가지게 하고 임종과정에 간호사가 참여하라고 배우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상황을 빨리 종결하고 정리해야 하는 친절하지 못한 간호사가 된다. 신규였던 나는 차치 간호사 선생님의 인상이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가족들에게 지금은 입안에 튜브가 있고 임종하기에 보기가 좋지 않으니 깨끗하게 정리하고 만나게 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커튼을 치고난 뒤에야 잠시 사후처치를 했다. 정리하고 난 뒤 잠시 인사를 나누게 하고 곧 영안실로 이동했다.
다음 날 데이근무를 출근하는데, 좌측 손바닥과 손목이 아팠다. 이 부위가 아파본 적이 없는 나는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그 통증은 흉부압박을 하면서 생긴 통증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심폐소생술을 잘했는지 못 했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당연히 잘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실전을 따라가기는 어려웠고 그 대신 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래서 출퇴근길에는 항상 ACLS 검색하며 고품질 심폐소생술 동영상으로 공부하고 엑팅을 할 때에 술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습득했다. 사실 처음에는 뭐가 무엇인지 하나도 이해 안 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지금은 최고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해를 하고 심폐소생술에 임하게는 된 것 같다. 이토록 심폐소생술에 진심이었던 이유는 심폐소생술을 하다 심전도에 리듬이 보이기 시작하거나 자발호흡이 생겼을 때 카타르시스처럼 해냈다는 기쁨이 넘쳐오곤 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람의 생명을 살려냈다는 신기한 감정과 이를 더 잘해보겠다는 다짐, 나는 심폐소생술에 잘해서 사람을 살리고 싶었나 보다.
간호사가 되고 나서 지금은 심폐소생술에 능숙한 간호사가 되었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시간이 주는 가르침은 훌륭하다. 그동안 수없이도 경험을 해나가면서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적어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모습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이 유능하진 않지만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