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를 닮은 나

by 긍정의마나

저희친정은 제사가 아주 많고 할아버지에 할머니에 시동생까지 하면

한집에 10명도 넘는 식구들이 사는 집이였어요,


저는 아직도 생각이 나는게

설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한달전부터 가례떡을 뽑아서 직접 말려서 썰어서 떡국을 끓일 준비를 하고

한번에 가족이 40~50명씩 방문하는 종가집이 였어요.

또 제사는 어찌나 많은지 제사를 지내면 또 마을 사람들에게 제사밥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는 곳이라

제사의 규모도 컸었고 제사준비에 제사음식을 배분해서 손님을 접대하는일까지


그야말로 우리 엄마는 매일 매일이 대가족의 시집살이 였어요.

하루에 도시락을 10개씩 싸던 시절이 있었고

그시절 중학교 다니며 자취를 하던 삼촌들이 집에 올때면 일주일 옷이며 교복이며

또 일주일 먹을 반찬까지 만들어서 시동생을 돌봤었죠....


안그래도 없는 집에서 불때서 밥해먹던 그 시절시골에서 어떻게 견뎠나 ...

철이 들쯤이였나 ? 사춘기땐 일을 끊이 없지

돈은 늘 없지ㅠㅠ 엄마는 이제아프기까지 하지...


아파서 밤마다 잠도 못자는 엄마를 보면

"엄마 그냥 도망가서 살지 ㅠㅠㅠ 왜 이런데서 버티고 살았어? " 라며 엄마에게 볼맨소리도

참많이 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적엔 엄마 아빠 모두 일이라는 일은 다 하셨는데

낮엔 농사일 저녁에 부업으로 엄마는 삼베짜는 일을 하던 기억도 있고

아빠는 천원짜리 한장이라도 준다고 하면 경운기를 가지고 남의 논에 일하러 갔다는 이야기도 저에게 하시곤 합니다.


설명절에 유과라고 하죠 ? 한과를 만들려면 반죽을 발효시켜서 방방이 널어 놓고 말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에 한과반죽이 붙어서 ㅠ 짜증이란 짜증을 다 부렸던 생각도 있네요.


그런데 제가 아들둘을 낳고 회사를 다니면서

어느순간 뒤를 돌아보니 엄마의 모습을 너무나 닮아 있더라고요.


기댈곳 없는 친정 더 기댈곳 없는 시댁

아들둘을 남편과 저와 둘이서 낳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키우는게 정말 녹녹치 않았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아프지않고 도와준 덕분도 있고

남편이 주말은 쉬는 날이라 주말엔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기도 했는데


주6일을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새벽 2시까지 글을 쓰던 그때는 더 엄마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리곤 내가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참 많이 닮아가는 구나~~ 그렇게 볼맨소리르르 해대던 엄마를 내가 쏙 빼닮은걸 보고

이제는 불만이 아닌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무 많은 정보가 때론 발목을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