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by 하모우

1.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비교적 많이 느낀다.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한 끼를 구성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깊다. 대신 체중감량은 매일 숙제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편식은 꼬박꼬박 한다는 것이다. 콩밥을 싫어한다든지, 카레에 들어간 당근을 먹지 않는다든지, 김치를 먹을 때 씹히는 큰 생강조각이 거슬린다든지 등 여러 종류로 편식을 한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더 풍부하게 느끼는 것에 있어서 편식은 굉장히 큰 걸림돌이기에 이제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나감에 있어 경험의 가치를 긍정하고, 경험이 나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안 해봤던 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자는 다짐을 매번 한다. 웃긴 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는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본다든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든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중감량을 한다든지 등 생각만 해놓고 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렇게 놓쳤던 일들 중 가장 오래된 일을 기억에서 꺼내보자면, 그것은 일기를 쓰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짧든 길든 내 생각을 남겨보려 한다.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혹은 이 글이 마지막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기 싫었던 일 중 가장 간단한 일부터 해보려 한다.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해보고 그 이유를 찾는 것과, 귀찮음 혹은 무의식에 가려져 해보지도 않고 그 이유를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다르기에.



2.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잔을 채워주던 큰형의 말처럼, 인생에 파도가 많다는 단순한 이유로 자신의 팔에 그 파도를 새긴 작은형의 말처럼 최근 나의 인생은 격정과 상실의 시대였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순간에 잃어버리고 불같이 화내기도 한 그 감정들이 점철되어서 불안정한 생각이 불안정한 삶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다행이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들과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는 덕에 삶을 안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꽤 일찍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그 노력의 가장 작은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3. 어렸을 땐 그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뭉툭한 사람. 쿨하고, 자신의 감정에 행동이 휘둘리지 않는, 항상 차분한 생각으로 삶을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렇지 못한 나와의 괴리감을 항상 느꼈고, 매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그 통제가 어느 정도 습관화되었을 때, 나는 뭉툭하진 못해도 뾰족한 마음을 어느 정도 갈아낸 사람이 되긴 했지만, 반대로 이번엔 내 감정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내 감정을 줄곧 표현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을 한다.


오글거리는 말, 진심이 담긴 말을 하는 것에 나는 익숙하지 않았고, 어렸을 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까지 했다. 근데 지금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우려 한다. 어쩌면 나의 목표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한다는 그 자체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감정의 건강한 표출이라는 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우선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써 구체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이 글을 시작하게 했다.



4. 게으른 완벽주의자. 며칠 전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상담을 하던 중, 한 학생이 자신을 한 마디로 소개했다. 격한 공감을 느껴 웃으며 MBTI를 물어봤는데, 역시나 -NF-라고 하더라. 물론 나는 MBTI를 믿지 않는 데다가, 어쩌면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성격 유형을 단순하게 나누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상담하면서 피상담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개인별로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을 제공하는 데에는 괜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서론이 길었지만, 나 또한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유독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여기서도 여전히 생각 중이다.) 내 자아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나이 정도였을까, 어릴 적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나는 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였다. '나는 남들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왜 나를 못 보는 걸까', '내가 1인칭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어쩌면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신이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등 철학적인 질문에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다. 그리고 자아가 어느 정도 원숙해진 이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물음들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파생된 수많은 고민들이 나를 괴롭힌다.


굳이 따져보자면, 생각이 많은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길어지면, 생각에 소비되는 에너지가 행동을 위해 소비해야 할 에너지보다 훨씬 더 많아지기에 그 지점부터는 생각이 나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의 일생을 살면서 고민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던 일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많았고, 고민 자체가 의미가 없었을 때가 항상 많았는데, 왜 나는 오늘도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인간은 누구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대한 그 좇음은 당연한 것이니, 모든 인간은 본래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나는 오히려 겁쟁이 쪽에 가깝다. 겁이 많기 때문에 결핍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완벽주의에 가기 위해서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작은 것 하나에서 시작하자.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이런 작은 변화가 나중에는 큰 변화로 내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면, 게으름을 없애기 위한 작은 습관의 변화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텍스트의 양이 많아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유가 무슨 큰 결심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 마음속 서랍에 내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몇 자 적어보았다. 그리고 당장은 그리 필요하지 않은 생각들이 많을 것이기에 당분간 더는 꺼내보지 않을 생각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펜시브처럼 그저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는 용도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깨지고 부딪혀봐야 아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방향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