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꽤나 무뚝뚝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북에서 내려오신 양반 중의 양반이시라, 내가 재롱을 떨 때 말고는 크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진 못 했다. 방금 크게 웃으신다는 표현을 적어놓고 나도 모르게 혼자 실소를 했는데, 할아버지의 큰 웃음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저 허허- 하시고는 금세 입을 다물고 마셨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큰 웃음소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반면에, 웃음이 많으셨던 할머니께서는 노래도 좋아하시고 본인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시는 천상 소녀셨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내가 본 할머니께서는 그 옆에서 웃음을 아예 잃지는 않으셨지만,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조금은 웃는 것에 조심하시는 모습이셨다. 나 또한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어려서부터 매사에 속된 말로 까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진중한 모습을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마음속에서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커서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차츰 생기면서 수많은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그 과정에서 얻은 대답 중 하나는, 난 생각보다 까불이임과 동시에 표현해주고 표현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드러났지만, 어렸을 때 나는 그저 뭉툭하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이 내게 그렇게 가르쳐왔고, 남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편이 훨씬 편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바뀐 지는 벌써 꽤 됐지만, 최근에 나를 더 알아감에 있어 바뀐 생각들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왔다는 말도,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편하다는 말에도 모두 나라는 사람이 없다. 정작 저렇게 살아간다는 주체는 나인 건데, 그 주체를 빼놓고 살아간다는 말이 너무나도 모순적인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상대나 환경에 화를 내거나 따져도 바뀌는 게 없다면, 그냥 그 사람이나 그 상황을 넘어가버린다고. 어차피 바뀌는 게 없는데 굳이 본인의 감정을 낭비시켜서 힘든 게 오히려 손해라고 했었다. 어찌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온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스스로를 위한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넘어가는 행동으로써 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건 생각뿐이다. 그렇다면 홀로 남은 감정은 도대체 어디로 갈 수 있는 걸까? 이걸 반복하다 보면 감정은 마음속에 남아있고, 그게 응어리지면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힌다. 이전에 청소라는 글을 쓸 때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남아있는 감정들이 쌓이게 되면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된다. 감정은 뭉치면 뭉칠수록 더욱 큰 힘을 내기에.
내가 어떠한 감정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있어서만큼은 어디까지든 당연한 것이다. 설령 그 감정이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아직 그 이유가 숨겨져 있을 수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굳이 감정을 이유라는 생각에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개는 별개의 것인데, 누가 먼저 나가든 상관없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건 둘 다 행동으로써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근데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은 생각을 내보내는 것에만 익숙하지, 감정을 내보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반대로 행동하면 된다.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버스를 탈 때 기사님께 인사를 자주 드리는 편이다. 버스에 오를 때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주로 인사를 건네는 편인데, 하루는 버스를 같이 탔던 일행이 의아해했다. 왜 인사를 꼬박꼬박 그렇게 하냐면서 그 모습이 처음에는 좀 이상했다고 한다. 약간의 위선이 좀 느껴졌달까. 과하게 예의 바른 척을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단순하게 인사를 하면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 기분이 좋은 건 뭘까? 조그만 선행을 했다는 만족감일까?
그것보다는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표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과하게 의미부여를 한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오늘 내가 안녕하니, 상대편에게도 안녕하시냐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당신의 기분은 어떠십니까? 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말인데, 인사말이 되는 게 신기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남을 보고 처음 하는 인사말이 정작 내 감정을 보여주고 남에게 감정을 보여달라는 말이라니.
표현을 하면 감정이 드디어 몸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화가 나면 화를 내는 말을, 고마우면 고맙다는 말을,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표현 중에 굳이 말을 꼽은 이유는, 말이 가장 쉬운 표현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표현을 주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전달의 과정이 가장 쉬운 것이 말이다. 그렇기에 감정표현이 서투른, 혹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말로써의 표현으로 연습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나의 가족인 형들이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옛날엔 아예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어깨를 툭 치거나, 배시시 웃는 행동이 전부였지만, 그래서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던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근데 어느 순간, 전달되지 못 한 감정들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뭔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눈을 딱 감고 그런 말들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쉬워졌고, 하다 보니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내 몸속에서 나의 감정들을 더 잘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 중에, 최근에 가장 공감되었던 말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마음의 상태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아무런 것도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해주신 것이다. 매번 우울하거나 분노에 차 있는 것이 좋지 않듯, 매번 기쁘거나 즐겁기만 해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잔잔한 마음 상태를 가지려면 마음에서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모두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가 아마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엔 낯설고, 힘들고, 때로는 너무 오버스럽다고도 생각될 수 있다. 표현할 정도의 감정이 아닌데 굳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할 테고, 거짓된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려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감춰두는 것이 낭비인 것이다. 쌓아두면 그 감정은 더 힘이 강해져서 다른 불필요한 감정들을 불러 모은다. 이 불필요함 자체가 낭비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후에 능숙해지면 이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이 멀어진 남에게, 내 표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벽과 같은 남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위 사람들은 내 감정을 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존재이겠지만, 어쨌든 내보내는 첫 번째 연습을 시작했으니 방법은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은 나 또한 경험해보지 못 한 방법이지만, 그렇기에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을 즈음엔, 내 곁에 나처럼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한다. 처음부터 숟가락질을 잘하는 아이는 없다. 이유식을 처음 먹는 아이의 옆자리엔 그가 흘린 침과 음식들이 무수히 많다. 지금 우린 모두 매일같이 능숙하게 숟가락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