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by 하모우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여태 귀찮아서 집안일을 한참 안 했더니 이곳저곳에 먼지가 쌓이고 분리수거 통은 뚜껑이 안 닫힐 정도로 꽉 차있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마음만 며칠째였기에 오늘은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매번 청소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쌓이기 전에 미리미리 조금씩 깔끔하게 치워두면 될 것을, 여태까지의 나태함이 또 오늘의 나를 고되게 만들었다.


곳곳에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나뒹구는 물건들부터 제자리를 찾아줬다. 가방, 빨래바구니, 영양제 등등, 여태 좀 바쁘다는 핑계로 물건들을 사용하고 내팽개쳐뒀던 게 생각났다. 정리를 해두니 빈 공간들이 보이고, 빈 공간들에 숨어있던 먼지가 눈에 띄었다. 곧바로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시작했는데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혹시 물이 새나 덜컥하는 마음에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웬걸, 천장은 깨끗했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내 몸에서 흐르는 땀이었다. 날씨가 이렇게 더웠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몰아서 청소를 하느라 지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청소를 미루지 않으리라는 또 한 번의 지켜지지 않을 다짐을 했다. 마지막 분리수거까지 끝내고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뒤 깔끔해진 방바닥의 한가운데 대자로 뻗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밀리기 전에 미리미리 할 수는 없을까?


사실, 주위를 청소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청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원체 예민함을 타고난지라 남들보다 담아내는 것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마음속에 쌓이는 것들도 많다. 물론, 쌓이는 것들 중에는 사랑이나 행복, 즐거움처럼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담고 싶은 것들도 있지만 분노, 우울, 혹은 자책 등 마음속에 굳이 담아두지 않아도 될 것들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것들은 둥글둥글한 앞의 감정들에 비하면 굉장히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담아두는 동안 스스로 쉬이 다치곤 한다. 때문에 이러한 감정들을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긴 해도, 방청소를 미루는 여느 때의 나처럼 마음청소를 미루다가 결국 속상함에 지쳐서 급히 하나씩 그것들을 정리하곤 한다.


마음청소가 밀리는 이유는 두려움인 것 같다. 날카로운 감정들을 마음속에서 제거하려면 그것들을 직접 손대어 집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찔리고, 찢기고, 또 베이기 때문에 청소를 자꾸만 미루게 된다. 감정을 일으킨 사람에 대한 원망,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한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굳이 이런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자책이 청소를 할 때마다 내게 상처를 내기 때문에 번번이 청소에 손을 못 댄다. 그러면 또 다음으로, 다음으로, 계속 미루게 되다가 나중에는 나의 그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소심해서, 예민해서, 게을러서라는 말들로 나를 갉아먹게 되고, 그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에 대한 불만은 예상치 못한 다른 곳으로 분출되어 다시금 스스로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물론, 해야 되는 일이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내가 상처받으며 그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소를 꼭 급하게 해치울 필요는 없다. 다칠 것 같으면 보호 장구를 챙기고, 힘들 것 같으면 쉬었다 하면 되고, 목이 마르다면 물을 마시면 된다. 결국은 시작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한 방법들이 결국 핑계로 전락해 버리기 마련이니 쉽게 다치지 않을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작을 하면 된다. 그리고 내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방법의 첫 번째가 될 것이다. 어떠한 감정이 든다고 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다거나 그르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최근 나의 취준기간이 늘어날수록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내 주변 지인들의 성공 소식들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한편으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부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질투도 났었다. 나도 좀 상황이 나았더라면, 나도 저들처럼 끈기 있게 할 수 있었더라면, 하고 그들의 노력을 동경함과 동시에 나의 부족함을 자꾸만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그들에 대한 내 감정들이 날 괴롭혔다. 처음엔 좋지 않았던 감정들이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들을 응원하는, 응원했던 사람이라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당연히 들면 안 되는 것이고, 그들의 더 큰 성공을 빌어주진 못 할 망정 이렇게 질투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축하한다면서 뒤로는 배 아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 우울감이 날 잡아 끌어내리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행히 금방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남들에게 질투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지금 내 상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단지 내 지인들이 나보다 조금 이르게 얻었기 때문에 그 차이에서 나오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이미 원하는 바를 이루고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감정이었을까? 내가 만약 평생 다 써도 쓰지 못할 만큼의 부를 가진 어느 나라의 석유 재벌들 중 하나라면 그들을 부러워할까? 하루하루가 생사의 위기에 놓인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아이들 중 하나라면 그들을 질투할까? 내가 누군가를 질투하고 부러워할 수 있는 건 그 누군가와 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하고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들만큼 충분한 능력이 있고 좋은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항상 모든 부분에서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기에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거기서 촉발되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판단과 모든 감정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내가 내린 판단이 혹은 감정이 그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거나, 더 좋은 대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나라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거나 후회하지 말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더 나아진 지금의 나에 맞춰서 채워나가면 된다. 그렇기에 내 삶의 지향점은 부, 명예, 사랑 혹은 타인 등 다른 어느 것도 아닌 나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는 길은 남들이 다 틀렸다고 얘기해도 적어도 내가 걷고 있는 한 지금 나에겐 무조건 옳다. 어제의 내 모습은 오늘의 내가 볼 때, 항상 부족할 것이다. 나는 그 부족함이 매일 생겨날 것임을 기대하며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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