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불의의 사고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병마와 힘겹게 싸우며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자신을 옥죄는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서 우울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에게 삶이란 덧없고, 한없이 보잘것 없어진다. 모든 것이 없어지는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내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오늘 내가 두고 간 미련에 대한 후회들은 나를 함부로 높은 곳에도 올라가지 못하게,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에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겁이 참 많았던 나는 어린 나이에 꽤 일찍 죽음을 곁에서 맞이했다.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두 분은 꽤나 장수하셨다. 그리고 걱정할 만큼 큰 병을 앓지 않은 채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뒤, 그들은 말이 없으셨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그저 편안히 눈을 감고 있으셨다.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어린 나이에 처음 접한 죽음이 사람들의 입에서 호상이라고 오르내리는 평안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건설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은 사람들은 아쉬워했고, 다만 그 아쉬움에 슬퍼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에 입학해 정신없이 재밌는 생활을 이어갈 무렵, 두 번째 경험을 맞이했다. 친하게 지내던 같은 과 동기였고, 같은 동아리에, 같은 집행부까지 함께 속해있어 왕래가 잦던 사이였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잠결에 받은 갑작스러운 비보는 아직까지도 그 당시 나의 당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연락을 듣자마자 가장 빠른 시간으로 열차를 잡았고,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사진으로만 보이던 그 친구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고, 가빠지는 숨소리에 이어 하염없이 곡소리를 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정확하게 떠올리기에는 그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나의 눈물은 친구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그 친구의 사진에서 보였던 형용할 수 없는 허무(虛無)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픈 몸은, 채 다 펼치지 못했던 그녀의 찬란한 꿈은, 깊은 슬픔 속에서 눈이 벌게진 채 묵묵히 상주의 자리를 지키던 동생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그녀의 영정사진만 남겨두었다.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허무의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과 아쉬움의 감정이라기엔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내가 군대에 갈 무렵,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엄마, 운동 좀 하셔야겠어."라며 애써 괜찮은 척해보았지만 이후 받은 검사 결과는 좋지 못했다. 곧이어 대학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를 진행하셨고,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 입대 한 달 전이었다. 믿지 못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이 왜 나에게, 평생 술담배도 안 하셨는데 왜 하필 그녀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온 것일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든 곁에 있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입대 취소 신청을 하려 했지만, 결국 방법은 없었다. 입대 후 길게만 느껴졌던 수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기적과도 같이 어머니는 내가 전역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약 이 년여간 밤마다 나는 어머니가 잘못되는 악몽을 꾸면서 생기는 불안한 마음에 맞서 악착같이 버텨왔고, 어머니도 강인하게 버텨주셨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가 영원히 버텨주실 줄 알았다. 생각보다 경과가 좋다는 말에 안도했고, 우리에게도 희망은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5월에 내가 월급을 받고 처음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골라드리던 날 어머니는 입원하셨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결국 일평생 어머니께 마땅한 선물 하나 해드리지 못한 막내아들을 뒤로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굉장히 낙천적인 분이셨다. 살아생전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실 정도로 천사 같으신 분이셨다. 항상 나에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불어넣어 주셨고, 죽고 싶다면 죽을 용기로 살아가야 한다고 하시며 의지에 찬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랬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제는 힘들어."였다. 눈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놀랐다. 언제나 괜찮다는 말만을 하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차라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정도로 힘이 드시는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햇수로 약 삼 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힘든 삼 년이었다. 얼이 빠진 채 살기도 하고, 술독에 빠진 것처럼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기도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괜찮은 척, 슬프지 않은 척했다가 오히려 문제를 키워버렸다. 어느 날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날 뻔했다. 트럭이 우회전을 하면서 날 보지 못했고, 감속이 늦어졌다. 이대로 치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들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오금이 저리고 무섭다는 생각에 몸이 굳었을 텐데, 순간 이상한 생각이 새어 나왔다. 단순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하기보다는, '이제는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생각보다 죽는 것이 살아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말들이 들렸다. 물론 트럭은 제때 멈춰 섰고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야 내게 어떤 위험이 닥쳤었는지 인지한 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내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서웠고, 우울의 심각성에 대해 깨달았다. 이후 다행히 증상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었고, 현재는 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죽음 뒤에 남을 아쉬움 때문에, 허무한 감정 때문에, 아픔 때문에라도 두려워할 수 있겠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있는 여러 가치들을 포기하고서라도 죽음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살아있음은 덧없는 것이다. 두려움의 감정을 단순하게 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의지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사고가 아닐까. 죽음이 두려워질 만큼만 살아보자.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죽음이라는 한계는 매섭게도 명확하다. 죽음이라는 그 한계가 인간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