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하진 않았지만, 남들만큼은 부족한 점 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가정환경이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어머니와, 내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신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친한 친구들에게만 털어놓았지만,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 아니, 사실은 난 내 아버지가 싫다. 만약 이 글에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모두 털어놓자면, 글을 완성하는 데에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 걸릴 것이다. 그만큼 나는 여태까지 내 아버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왔다. 짧은 사담 속에서도,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대화에서도, 심지어는 긴 밤이 함께하는 취중진담에서도 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먼저 꺼낼 수 없었다. 증오의 감정으로 그를 본다고 생각하기엔 그 감정은 너무 단순하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의 '이런 사람'을 맡기에는 그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나조차도 먼저 이야기를 꺼낼 엄두가 안 난다. 남들이 보기엔 말이 안 되는 부정적인 기억들이 그저 나의 왜곡된 기억으로 비칠까 봐 겁이 났다.
부끄러웠다. 내 기억 속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아버지와 나에 대한 좋았던, 그러니까 일말의 긍정적인 경험이 단 하나도 없다. 내가 봐도 거짓말인 것 같다. 근데 어떡하나, 사실인 것을. 아버지는 폭력적이셨고, 고압적이셨고, 냉혹하게도 이기적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으로 가장 깊게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친구에게 면도를 배웠을 때이다. 스무 살이 되어 수염이 자라고, 면도를 해야 하는데, 편의점에서 일회용 면도기를 사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서 결국 친구를 만나 면도하는 법을 알려달라 부탁했는데, 처음엔 장난인 줄 알던 친구가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이런 건 보통 아버지가 가르쳐주시지 않냐"라고 하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어린 나이에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버지라는 주변인이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생각을, 아니 보통의 많은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내가 지금 나의 형들과 가끔 술도 한 잔씩 하고, 연락도 자주 주고받고,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만큼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어렸을 적 우리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삼남 중 막내로 태어났고, 게다가 형들과 나이가 10살, 7살 터울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내게 이쁨 많이 받고 자랐겠다며, 귀여운 막둥이로 태어나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랐겠다며 나에게 부러움을 표했다. 그럴 때마다 겉으로는 손사래를 치며 개구쟁이 형들과 많이 싸우면서 컸다고 능청을 떨며 부인했지만, 속에선 뭔지 모를 무거움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의 형들은 많이 맞았다. 물론, 나 또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항상 무서움에 벌벌 떨었지만, 그들이 당했던 건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가정폭력을 당했다. 잘못해서 맞고, 대들어서 맞고, 기분이 나빠서 맞고, 그런 형들을 유일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였지만, 엄마도 굉장히 힘에 부쳐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버지를 말릴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은 포기라는 감정으로 내 아버지를 무관심 속에 두었다. 그리고 그 폭력이 형들로부터 나에게 다시 돌아올 때도 있었다.
물론 형제니까 싸울 수 있고, 서로에게 불편한 점도 많았겠지만, 나는 나의 형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을 정도로 어렸을 땐 그들을 정말 싫어했다. 실제로 하루는 싸우면서 너무나도 가슴에 한이 맺혀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주방칼을 들고 형들과 대치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교복을 막 입었을 때 형들은 이미 교복을 벗고 사회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나이차이가 컸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난 그들과 싸움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 울분이 폭발해서 모두 없애고 나도 옥상에서 떨어져야겠다고 선언하며 달려들려고 한 기억이 있다. 다행히 큰 일 없이 사건이 정리되고, 그 이후로 형들은 혀를 내두르며 당분간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어버리고 싶다고 한 감정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나의 심리상태는 굉장히 위험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형들을 이해하게 된 건 나 또한 형들과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집안 분위기 속, 아버지의 잇따른 무시와 폭력성 속에서 나도 감정의 통제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들이 결국 밖으로 분출됐고, 고등학교 때 여러 친구들과의 충돌과 더불어 크고 작은 사고를 남기는 등, 인생에서 후회할 만한 실수들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 또한 나의 형들과 같은 감정과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그 시절에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심하게 대했던 것일까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폭력에 얼룩져 짓눌린 감정들을 마음 한 켠에 둔 채로 어린 동생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기에 그때의 그들은 아직 너무나도 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충분히 지난 지금은 내 삶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에게 잘 버텨주어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아서, 이제라도 막냇동생에게 작게나마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집은 단 한 번도 내게 안식의 공간이 되어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무서워 숨을 죽였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유 없는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적인 행동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내 방이 없어서 그것들로부터 숨을 수도 없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피하고 싶었지만, 형들과 나는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까지 각자의 방이 없이 거실에서 함께 지내며 그 공포를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리고 반년 전, 집을 나왔다.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은 월세, 매 달 스치듯 빠져나가는 잔고의 출금내역이 너무나도 벅찼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26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제는 더 이상 열리는 도어락 소리에 숨죽이며 자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 층수를 세며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화장실을 가며 거실에 앉아있는 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20여 년간 집에 들어가기 싫어 매일 동네 몇 바퀴를 뱅글뱅글 돌던 내가, 이제는 처음으로 '진짜' 집에 가고 싶었다.
남들에게 보이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글이고,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기에 글을 올리고도 많이 걱정할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이런 기억들도 언젠간 잊혀 갈 때쯤 서랍을 열고 마지막으로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단단해지자. 누구나 힘든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 누구의 기억이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어두운 기억은 그리 쉽게 밝아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밝아지리라는 희망을 언제나 마음에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