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by 하모우

나는 "선물 같은"이라는 형용사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선물이라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괜스레 좋아진다. 이 세상의 햇살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다는 느낌이랄까, 주변이 따뜻해지고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오히려 그래서 저 표현을 굉장히 아끼는 편이라, 웬만큼 좋을 때가 아니면 잘 나오지 않는 어휘인 것 같다. 그만큼 나한테 선물이란, 그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굉장히 큰 의미로 다가온다.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본인의 관심을 스스로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기쁨을 차지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지 않나 싶다.


예전부터 특히 나는 선물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더욱 큰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선물을 많이 안 받아봐서 그런가 싶다가도,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는 내가 조금은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물을 받을 때보다 주는 과정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을 때는 받는 그 순간부터 행복을 느끼지만, 줄 때는 주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행복을 느낀다. 그렇기에 행복을 느끼는 시간 또한 더 길어져서 주는 걸 선호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떨림, 어떤 선물을 줄지 고르는 과정에서의 설렘, 선물을 주기 직전까지만 주어진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 긴장감, 마침내 선물을 전해줄 때의 후련함과 상대의 반응에 따른 만족감처럼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만 해도 굉장히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고, 이런 감정들은 나라는 사람을, 주는 것에 익숙한 이기적인 사람,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난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선물의 가치가 어떻든, 누군가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고 생각하여 작은 선물을 할 때에도 웬만하면 상대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나 마음을 숨기고 몰래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을 꽤나 잘하는 편이라, 보통은 가까운 상대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게 있다면 슥- 파악해서 짜잔-하고 선물을 해주는 일을 가끔 한다. 때문에 주변에서 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놀람과 기쁨을 함께 표현해주는 일이 많았고, 나도 그들의 반응을 보며 덩달아 즐거워했다. 미리 생각하지 못 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들의 반응은 굉장히 순수했고, 순수한 그들의 행복감은 내게 쉽게 전염됐다. 사람은 이런 걸 먹고사는 건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깜짝 선물이라는 행위는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 순수함을 향한 동경 등 여러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켜주며, 그렇기에 그 중독성은 상당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선물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는 걸 좋아하는 나 자신을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표현한 것도 선물에 관한 몇몇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선물을 받은 상대방이 만족스러운 표현을 돌려주지 못했을 때 스스로가 실망한 적도 있었고, 상대방에게 서운해한 적도 있었다. 물론 선물을 할 때에 어떠한 대가나, 마음속에서 원하는 그들의 만족에 대한 표현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고마움의 표현에 앞서서 불만이나 부담감의 표현이 먼저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기에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곤 했다. 내 선물이 부담되었을 수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선물을 준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내게 선물이란 일말의 놀라움이라도 함께 했어야 하는 것이기에, 상대의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 억지스럽게 선물을 받게 됐던 것이었다면 나의 실수로 생각하고 종종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이후에야 깨달았던 사실이지만, 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불만이나 부담감을 표현했던 그들을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내가 과했다거나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 선물 같다는 표현마저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인 나는, 그들의 선물을 굉장히 심사숙고했었기에 굳이 받는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하며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그것을 준비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스스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된 사실은, 애초에 그들은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에게 선뜻 선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 선물을 받을 줄 아는 사람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내 선물은 억지스럽지 않았다. 받기에 부담스러운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그 정도의 선물을 할 능력은 아직 되지도 않았다), 선물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닌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내게 받기만 해서 부담을 가졌다고 하기엔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점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히려 일방적으로 잘해줬다는 점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내놓은 반응들은 너무 서툴렀다. 그랬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표현이 정말 서툴렀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이걸 서투르다고 해도 될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의 표정은 고맙다기보다는 난처한, 혹은 마뜩잖은 표정에 오히려 가까웠다. 물론, 선물을 받은 직후엔 그럴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깜짝 선물을 받으면 당황한 표정이 가장 먼저 나오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후에도 고맙다는 표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안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그런 표현을 못 하고 속으로만 충분히 그런 감정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번의 표현으로 이후의 모든 감정을 대체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 글에 담긴 나의 어린 생각들이 나중에 보면 부끄러워질 것 같아 걱정되지만, 이렇게 투정이라도 부려보고 털어내고 싶었다. 고맙다는 말 열 번만 더 해주지, 난처한 표정 대신에 한 번 꼭 안아주기라도 해 주지, 하루 종일 억지로라도 방방 뛰면서 나의 선물을 거짓으로라도 찬양해 주지.


근데 아마 거기까지가 그들의 표현 방식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지극히 주관적이고 좁은 내 우물 안에서 그 사람들을 바라보자면, 그들은 삶을 풍부하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오만한 생각이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나 또한 그들을 존중하고 있고, 당시 그들에겐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표현해 준 감사의 그 한 마디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굳이 바라지는 않지만, 아마 언젠가 그들도 선물을 순수하게 좋아했던 나를 생각할 때 조금은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며칠 전, 친한 친구에게 꽤 부담되는 선물을 했던 적이 있다. 생일선물이랍시고 조금은 가격대가 있는 선물을 골랐는데, 혹여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봐 수일을 고민했었다. 결국 정했던 선물을 전해주었고, 당연하게도 친구는 처음에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가까운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잖아. 물론 나도 너의 부담에 대해 많이 고민하긴 했지만, 내가 이 정도 선물을 주면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받아줬으면 좋겠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 드러난 순수한 행복을 보고 혼자 몰래 기뻐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 그 친구가 끝까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도 나는 똑같이 기뻐했을까? 음,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래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내가 몇몇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나서도 선물을 하는 것에 대한 순애가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받은 사람이 좋아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풍부하게 잘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또한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앞으로 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선물을 전해주며 더 많은 욕심을 부릴 것이다. 이제 그로 인한 상처는 더 이상 받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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