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거하게 차려놓고 혼술을 해서 그런 건지, 베개를 새로 바꿔 몸이 불편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운동을 다시 시작해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지 새벽에 문득 별 이유 없이 눈이 떠졌다. 최근에는 나름의 이유에 더해 새 일도 시작하고, 취미생활도 시작하는 바람에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기에 잠에 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의도치 않게 짜 맞추어져 있었다. 어제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열두 시를 넘기지 않고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눈이 떠졌을 때는 아직 컴컴한 어둠 속이었고, 뻑뻑한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다. 근데 오늘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눈이 떠진 뒤에 말똥말똥하더니 금방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으로 간단한 영상을 몇 편 들여다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났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보니 동트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남보랏빛 하늘이 밝아왔다. 한참을 하늘의 찬란함에 감탄하며 하늘이 연분홍빛으로 바뀌어갈 때까지 조용히 감상을 하고 있다가 책상 앞에 앉았다.
솔직히 눈이 떠진 순간부터 조금은 걱정이 됐다. 다행히 오늘은 출근 스케줄이 오후에 잡혀있어 큰 부담은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잠에서 깨면 출근 이후에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일찍 떠진 눈이 아쉽기만 했다. 한 서너 시간만 더 잘 수 있었더라면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잘 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하고 있구나!' 잠이 부족하다고 해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오늘은 그나마 여유로운 날이기에 이따 점심을 먹고 주어질 낮잠에 의지를 해봐도 괜찮고, 만약 그럴 시간이 없다면 고소한 커피 한 잔에 기대어 카페인 주유를 바라도 괜찮을 것 같다. 하다못해 정 피곤할 것 같으면 달콤한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당 충전과 빠릿빠릿한 각성효과를 기대해봐도 될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안 된다고 해도, 오늘 하루가 즐겁지 않으면 또 어떤가? 피곤한 만큼 오늘은 더 깊게 잠들 테고, 깊게 잠든 만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즐거울 텐데 즐거운 내일에 기대어 피곤했던 오늘은 조용히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걱정은 생각보다 약하다. 왜냐면 우리에겐 걱정에 맞설 너무나도 많은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무기 중에 하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로 많이 쓰는 의지(意志)라는 단어는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와 동음이의 관계를 가진 단어인 의지(依支)이다. 이 단어는 다른 것에 몸을 기댐 또는 그렇게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자신만의 고민거리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가까운 방법이다. 그래서일까? 쉬운 방법은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의지라는 방법을 잘 활용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편이다. 혹은 의지라고 하는 것은 결국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대상의 부재나 의지 대상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서 의지라는 방법을 멀리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궁극적으로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가 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결국 마지막에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는 사람은 본인일 것이며, 남들에게 크게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 도달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으며, 우리는 너무나도 편협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른 한계일 수도 있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비롯된 한계일 수도 있다. 매번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그 임계점을 돌파해 나가며 일상을 살아나가지만, 쉼 없이 그 일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이기에 가끔은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원히 돌덩이를 굴리는 시시포스마냥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금 한계에 부딪히는 형벌을 받으려 걸음을 옮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충분히 회복을 못 하고 일어나면, 더 이상 한계에 부딪힐 수 없거나 일어나서 부딪히는 데까지의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결국 한계에 도전하는 고통이 점점 더 두려워지고, 반복되는 지겨움에 회피하게 되어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비교적 주위 사람들에 비해 겪은 일이 많은 편이었고, 나의 걱정과 우울이 전염되는 것이 싫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거나 내 얘기를 툭 터놓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기대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어떤 대상에 의지한다는 것에 대한 방법 자체를 몰랐다. 그 상태가 지속되며 내 마음에 쌓인 응어리는 점점 커져갔고,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일이 두려웠다. 자존감은 계속 바닥을 쳐서, 돛이 꺾인 배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집채만 한 파도에 삼켜져 이대로 가라앉아 저 밑바닥에 닿기를 기다리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에 나는 기댈 수 있는 방법도 몰랐고, 기댈만한 대상도 없었으며, 기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마음 속 우울들이 커져서 다른 안 좋은 방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쯤, 다행히 스스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을 찾아갔었다. 이후엔 상담치료를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 속 얽힌 응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굳이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 나의 감정이 전염될까 걱정하는 부담을 가져도 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아무런 숨김없이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튼튼한 안전로프에 몸이 매어져 있는 것처럼 든든하고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한 번 기대어 보니까 매 상담이 기대됐다. 사실 생각해 보면 상담을 하러 가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때, 주로 얘기를 많이 하는 쪽은 나다. 내 얘기를 들으며 선생님께서는 한 두 마디의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시거나,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 꼭지를 던져주실 뿐,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가 이끌어간다. 비싼 돈 내놓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결국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며 의지할 수 있었던 경험이 여태까지의 삶에 없었기에 너무나도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느꼈고, 내 무거운 이야기들을 오롯이 들어주시기만 하는 선생님께도 경외감이 들었다.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사람의 어두운 면만을 보아주며 상대가 의지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버텨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존경심까지 들었다.
모든 상담자들이 그렇겠지만 상담을 받는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담이 끝난 이후에 선생님께서 안 계셔도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의지해보며 느낀 건, 그 방법의 시작점을 알 것 같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依支)해야겠다는 의지(意志)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하기 이전에도 내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서슴없이 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들도 있었으며, 막내라고 더 챙겨주는 가족들도 있었고, 나만을 바라봐주던 연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완벽하게 의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잘 보여야 했으며, 나의 마음속 어두움이 그들에게 전염되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는 내 얘기를 숨기거나 각색했다. 근데 어쩌다 보니 물질적으로나마 내가 숨김없이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이후, 한 두 번 경험해 보니 이젠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의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들은 내 진실된 모습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을 것이며, 충분히 밝은 사람들이기에 내 어두움에 쉽사리 전염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여태 나는 그들을 너무 과소평가했으며, 그들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나의 가장 약한 모습을, 가장 어두운 모습을 보고 도망갈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는 이미 도망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아마 내가 가장 단단한 시기에도, 가장 빛나는 시기에도 똑같이 내 곁에 없을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있다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할 용기가 필요하다. 설령 그 용기가 없다고 하면, 차라리 내가 그랬듯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전문적인 제삼자에게 기대어 보아도 된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의 삶이 밝아질 수 있는 길이 제시된다면 그 비용은 정말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글들에도 써놓은 이야기지만, 사람은 스무 살까지는 부모님께 기대어야 하고, 스무 살 이후부터는 자기 자신에게 기대어야 한다고 한다. 나처럼 여태 누군가에게 기대어보지 못한 사람은 무턱대고 스스로에게 모든 짐을 넘겨버리는 것보다는, 우선 마음 편히 기대어 짐의 무게를 나눠본 경험을 맛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 무거운 무게를 들고 가려면, 그전에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대충 짐작은 해보아야 하니 말이다.
며칠 전,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큰맘 먹고 노트북을 한 대 장만했다. 친구에게 그 소식을 알려준 뒤, 친구는 내게 글을 쓰려면 키보드를 따로 구매하는 것도 편하지 않겠냐며 생각 있으면 본인에게 말하라고 했다. 기기나 장비에 전문가인 그 친구는 필요하면 자기가 내게 어울리는 좋은 걸 알아봐 주겠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또, 오늘은 외국에 나가있는 다른 친구가 내 메신저 사진에 올라와있는 레고 장난감을 보고 내가 구매를 한 거냐며 물어왔다. 아직 사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구매할 거라는 내 답변에 그 친구는 기다리라고 말하며, 내 생일이 다가올 때쯤 본인이 직접 사가지고 들어올 테니 사지 말라는 얘기를 보내주었다. 둘 다 친구라면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그들은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얘기였을 수도 있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잘해주는 편이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엔 달랐다. 뭔지 모를 든든함과 편안함이 그 친구들에게서 느껴졌고, 그리 크지 않은 그들의 말을 가져와 나도 모르게 크게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조금씩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 영역들을 넓힐 수 있게 되는 걸까? 나아가, 결국엔 나 스스로에게도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의지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의 생각을 매번 들여다 봐주는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허영심 가득하고 부족한 나의 글에 공감하며 응원의 몇 줄을 꼭 달아주는 누군가가 보고 있어 주시기에 글을 쓰는 과정에 나를 더욱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나도 앞으로 더 밝아지고,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이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아마 그러면 세상에는 결국 의지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 된 사람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연보랏빛 새벽을 맞이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