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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Mar 13. 2020

내가 하는 건 도박일까 내기일까

도박과 내기의 차이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골프 내기가 도박에 해당될까. 

단지 액수가 높으면 도박죄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많은 액수일까. 


형법에서 정의하는 도박은 ‘재물을 걸고 우연한 승패에 의해 그 득실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도박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우연성이다. 던진 동전의 앞뒷면을 맞추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당사자들이 좌우할 수 없는 사정에 따라 재물을 나눠 가지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면 피나는 연습으로 동전의 앞뒷면을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경우 ‘우연’이 개입되지 않으므로 도박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이용해 금품을 벌었다면 사기죄에 해당된다. 즉 ‘타짜’는 사기죄로 처벌 받지만, ‘호구’는 도박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반대로 일부러 내기에 져주는 방식으로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엔 부정청탁에 해당될 수 있다.


스포츠 경기처럼 당사자의 능력이 승패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우연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도박죄가 성립된다. 실제로 내기골프가 법원에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2005년 법원은 내기골프를 상습적으로 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해 “도박은 우연에 의해 결과가 좌우돼야 하는데, 운동경기인 골프는 경기자의 기량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므로 도박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곧바로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골프는 경기자의 기량이 어느 경지에 올라 있어도 매 경기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이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 꼭 돈을 걸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 도박죄가 인정된다. 가령 골프 내기로 취업을 알선하거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재산상 이익’을 거는 것도 재물이 오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게임머니 같은 가상의 재물도 재산상 이익에 해당된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자 민모씨가 “게임머니는 형법에서 말하는 ‘재물’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물’뿐 아니라 ‘재산상 이익’을 건 도박이 처벌대상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일상에서 허용되는 도박이나 내기는 거의 없다. 실제로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인에게 허용된 도박은 복권, 경마, 경륜, 경정, 강원랜드 출입, 스포츠토토·프로토, 청도군 소싸움 등 7개뿐이다. 내기골프나 내기당구는 물론, 명절에 가족이 모여 치는 고스톱도 도박이라는 얘기다. 다만, 이처럼 개념상 도박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 수준이 ‘일시 오락’에 불과한 정도라면 처벌되지 않는다. 재물을 꼭 따겠다는 목적보다는, 놀이의 흥미를 북돋우기 위한 단순한 오락수단으로 사용된 경우에는 도박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회성으로 외국의 카지노에 출입해 게임을 즐기는 것을 처벌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일시적 오락’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연령, 직업, 재산, 도박 시간, 도박 장소, 도박으로 인한 이득의 용도, 함께 한 사람의 관계, 도박에 이르게 된 경위, 친분관계, 사회적 지위와 재산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박죄 성립 여부를 판단한다. 여기에 일률적인 기준은 없다. 양형기준표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불법 스포츠 도박, 불법 게임물 이용 제공 등 도박 환경을 제공하는 범죄에 대해서만 양형기준표가 제시돼 있다. 제반 사정을 참작한 구체적 판단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이에 따라 도박죄 성립에 대한 국민의 의문은 더욱 커지는 부작용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일시 오락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능력이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 판돈이 해당 도박자에게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대전지방법원은 1점당 50원씩 10회에 걸쳐 화투놀이를 한 남성에게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기초연금 9만원을 받아 생활하던 이 남성이 같은 장소에서 여러 차례 모르는 사람들과 도박을 한 것은 일시적인 오락의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봤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돈의 규모가 사회상규나 경제력에 비춰 크거나 모르는 사람이 놀이에 참여하는 경우 등에는 사행성이 인정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3월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조모씨의 사례도 있다. 조씨는 동네 친구들과 30분 간 화투로 이른바 ‘섯다’를 했다. 10회 정도 게임을 했고, 금액은 2만750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씨를 포함해 도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초생활수급비 40만~50만원 정도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액이 적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소득수준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금액이 너무 작고, 도박시간도 짧아 ‘일시적 오락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사자의 경제적 능력과 도박의 규모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일각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은 큰 돈을 걸고 내기를 해도 문제가 없고, 저소득층은 조금만 해도 범죄자가 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 처벌”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도박죄의 취지상 불가피하게 두는 차등이라고 설명한다. 도박에 빠져서 자기 생활을 못할 정도의 상황이 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허용되는 도박의 범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도박죄의 목적에는 정당한 근로에 근거하는 경제 윤리를 유지하고, 폭행·협박·살인·상해·절도·강도 등 다른 범죄를 방지하는 측면도 있다”며 “사회 통념에 맞는 수준에서 일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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