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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Mar 17. 2020

어디에 세금을 물릴 것인가

버는놈 vs 쓰는놈 vs 가진놈

세금 관련 기사는 언제나 ‘핫’하다. 그러나, 반응은 매우 차갑다. ‘월급쟁이만 죽어난다’, ‘그 세금 올리면 나라 망한다’거나 ‘허튼 데 돈 쓰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댓글이 달리는 게 보통이다. 대중의 주머니 사정에 직결되는 사안인 데다, 대부분이 세금을 더 걷는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대중은 이제 비슷한 뉴스의 제목을 보고 ‘무엇인지 모를 세금이 또 인상됐구나’라며 넘겨버리곤 한다. 이로 인해 정작 중요한, 그래서 오른다는 세금이 무엇인지, 왜 그 세금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빠뜨리기 쉽다.


더욱이 고령화로 인한 복지수요 증가로 증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국 다음에 올 질문은 ‘세금을 늘려야 한다면 어디서 더 걷어야 할까’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기준으로 걷어야 정의롭고 정당한 것일까. 또 어떻게 세금을 걷어야 할까.


가령 ‘부자 증세’에 사회적인 합의가 도출됐다고 치자. 그렇다면 부자 증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부자고, 부자의 ‘무엇’에 세금을 물릴 것인가. 연봉은 높은데 아이들 교육비로 돈 나갈 곳도 많아 내 집 장만을 미루는 김 과장과 은퇴 전 평생 번 돈으로 집 한 채를 산 월급 80만원의 경비 아저씨 중 누구에게 세금을 내라고 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금을 소득세·재산세·소비세로 구분한다. 소득세는 ‘버는 돈’에 매기는 세금이다. 직장인의 월급과 자영업자의 사업소득,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 집을 팔았을 때의 차익도 대상이다. 기업이 내는 법인세도 소득세에 해당한다. 재산세는 ‘가진 돈’에 매긴다. 부동산세가 대표적이다. 상속세·증여세 등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는 세금도 재산세다. 소비세는 ‘쓰는 돈’에 붙는다.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내는 부가가치세가 바로 소비세다. 부가가치세처럼 모든 재화와 용역에 붙는 일반소비세 외에도 술, 담배, 유류나 사치성 물건에 별도로 붙는 특별 소비세가 있다. 이 셋과 별도로 사실상 조세 성격을 띠는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세금 통계에 넣기도 한다.


OECD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한국 조세수입의 29%가 소득세다. 개인소득세가 16%, 법인소득세가 13%를 차지한다. 전체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33%)보다 낮은 편이다. 법인소득세는 평균(8%)보다 높지만, 개인소득세가 평균(25%)보다 훨씬 낮아서다. 반면 재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한국의 재산세 비중은 11%, OECD 평균은 6%다. 소비세의 경우 일반소비세(부가가치세)가 17%로 평균인 21%를 밑돌고, 개별적으로 붙는 특별소비세는 11%로 평균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소득:재산:소비세’의 무게중심이 한국은 29(16+13):11:32(17+11), OECD 평균은 33(24+9):6:31(21+10)로 분배돼 있다. 만약 세금을 늘려야 한다면, 결국 이 안에서 비중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디서 세금을 늘리는 게 합당할까.


수치로만 보면 비중이 평균에 비해 작은 개인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일단 비중만으로 따지기가 어렵다. 가령 법인소득세 비중이 크고 개인소득세가 적은 이유가 기업에 소득 자체가 몰렸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기업의 번 돈이 직원에게는 흘러가지 못하는데, 개인소득세만 늘리는 거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공적연금과 건강보험료 같은 사회보험료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조세에서 사회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2%에서 2014년 26.9%로 크게 증가했다. 사회보험료는 일반적으로 소득에 비례해 징수한다. 소득세로는 안 잡히지만 소득에 따라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한국의 회사보다 직원이 지는 사회보험료 부담이 크다. 개인이 내는 사회보험료가 세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3%로 OECD 평균(9.5%)보다 높다. 반면 고용주가 내는 사회보험료 비중(12.3%)은 평균(14.7%)보다 낮다. 현실적으로 다수의 대중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정치적 부담도 걸림돌이다.


이 점은 소비세도 마찬가지다. 10% 수준인 부가세를 어느 날 20%로 올린다고 하면 물가 상승에 대한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주세, 담배소비세, 유류세 등 특별소비세도 ‘서민 증세’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이로 인해 소비시장이 위축된다는 우려도 크다. 재산세 인상도 경제활력을 이유로 늘 반대에 부딪친다. 부동산이 소득 불평등을 야기하고 고소득층 부의 대물림을 위해 이용되니 재산세를 늘리자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대상에 저소득층이 포함될 확률도 비교적 적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마이너스 부의 효과’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산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가 당장 오는 게 아니더라도 소비를 줄인다는 얘기다. 부동산 같은 재산에 세금이 많이 붙게 되면 그만큼 투자자산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고, 이는 자산가격의 하락, 그리고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이도 저도 어렵다 보니 갖가지 대안도 나온다. 한때 불었던 피케티 열풍도 그런 맥락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내린 결론은 소득세를 지금보다 더 걷는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을 ‘노동소득’과 구분 지은 ‘자본소득’으로 한정했다. ‘일 해서 번 돈’ 말고 ‘돈 굴려서 번 돈’에 대한 세금을 늘리자는 얘기다. 물론 이 주장도 여러 비판을 받지만, 적어도 ‘무엇에 과세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사회는 너무 각각의 사안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개별적인 사안으로만 접근해 찬반을 논하다 보면 사회적 합의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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