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공정할 수 있을까
공정경제와 양면시장 이론
# 대도서관·양띵 등 스타급 인터넷방송 진행자(BJ)의 줄이탈에 아프리카TV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26일 아프리카TV는 “오는 12월부터 모든 BJ에게 광고수익 전부와 고화질 방송을 무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광고 수익배분 문제로 촉발된 스타 BJ의 아프리카TV 엑소더스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스타BJ들이 아프리카TV를 등지면서 아프리카TV의 주가는 보름 만에 20% 가까이 급락했다. (뉴시스, 2016년 10월 26일)
# 소셜커머스와 거래하는 입점업체 상당수가 매출은 늘었지만 불공정거래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략) 중기중앙회는 국내 온라인 상거래 규모가 2015년 53조원을 넘어서 대형마트·슈퍼마켓·백화점과 함께 주요 유통채널로 자리잡은 만큼 오픈마켓·배달앱·소셜커머스를 대상으로 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2016년 12월 27일)
# NHN과 공정거래위원회간의 법정다툼이 이달 말 시작된다. 24일 NHN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5월 공정위가 NHN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고 시정 명령을 내린 데 대해 이르면 오는 26일 또는 29일 중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연합뉴스, 2008년 9월 24일)
동영상 사이트와 콘텐트 공급자 사이의 줄 다리기, 소셜커머스 업체의 불공정 거래 논란, 포털업체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을 둔 소송. 서로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뉴스다. 해당 업계나 기업에서나 관심을 갖는 단편적인 단신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편적인 조각들 사이에는 공통으로 흐르는 경제 패러다임이 숨어 있다. 바로 ‘양면시장’과 ‘플랫폼 사업의 부상’이다.
양면시장은 201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 교수가 2000년대 중반 제시한 개념이다. 공급자-수요자로 이뤄진 단순 시장구조와 달리,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여러 고객 그룹이 거래를 하는 시장을 말한다. 인터넷 오픈마켓을 생각하면 쉽다. 오픈마켓 업체 입장에서 고객은 물건을 사는 소비자와 입점 사업자, 두 그룹이다. 여기서 플랫폼 사업자는 양측의 거래 또는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과 편의를 제공하고, 두 고객그룹 또는 한쪽으로부터 수수료 등을 받아 수익을 얻는다. 가령 오픈마켓은 전자거래 시스템을 제공하고 입점 사업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양면시장의 사업 유형은 다양하다. 오픈마켓 같은 거래연결, 신문·방송 등 광고에 기반한 미디어, 신용카드 등 거래수단, 인터넷 포털사이트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모두 해당된다. 넓게 보면 인력을 매칭하는 헤드헌팅, 부동산 중개, 쇼핑 공간을 제공하고 입점 사업자로부터 돈을 받는 백화점과 대형쇼핑몰도 양면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양면시장은 전혀 새로운 모델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모델이 2000년대에 들어서야 이슈가 된 이유는 IT 기술과 모바일 기기의 발달을 기반으로 더 많은 서비스와 상품들이 양면시장의 특성을 갖기 시작해서다.
양면시장에서는 한 고객 그룹이 한 플랫폼에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고객 그룹도 같은 플랫폼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경제학에서는 ‘네트워크 외부성’이라고 표현한다. 가령 특정 신용카드를 소지한 소비자가 많으면, 상점들은 그 신용카드의 가맹점이 되려 할 것이다. 또 이렇게 그 신용카드를 받아주는 가맹점이 많아지면 이번엔 반대로 그 신용카드가 유용하다고 느낀 소비자들로 인해 가입자가 늘어난다. 플랫폼을 통해 한 고객집단이 성장하면 다른 집단이 성장하고 이 결과로 원래 고객집단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플랫폼 사업은 ‘승자독식’ 구조를 띠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 외부성은 반대로 말하면 한쪽 고객집단이 늘지 못하면 다른 쪽 고객집단도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놓인다는 뜻이다. 결국 선순환에 먼저 들어선 플랫폼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그렇지 못한 플랫폼은 퇴출된다. 특히 최근 등장하는 온라인 기반 IT 서비스는 소비자의 정보수집과 이동이 편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강하다. 카카오톡처럼 특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한 시장 내에서 사용자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머지는 사장되는 것이 그 예다.
이로 인해 일단 한 번 자리 잡은 플랫폼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일도 생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뉴스 가운데 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예컨대 상영관 배분을 둔 극장(배급사)과 영화 제작사의 갈등, 게임 퍼블리셔의 횡포, 인터넷 포탈 업체와 언론사의 뉴스 배치를 둔 논란 등이 시장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둔 논란의 연장선이다. 물론 늘 플랫폼이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TV의 경우처럼 한 고객집단이 해당 플랫폼의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고객들이 찾을 수 있는 다른 대체재(위의 경우 유튜브)가 있다면 플랫폼도 ‘약자’가 되곤 한다.
한편 이처럼 ‘살벌한’ 시장에서 경쟁자보다 빨리 몸집을 키우려는 플랫폼 사업자는 전략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고객집단 가운데 누구를 먼저 끌어들일 것인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또 누구에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할 것인가.
특정 고객집단을 끌어들이는 데 가장 유용한 전략은 저가 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령 포탈 업체는 무료로 서비스와 e메일, 클라우드 서버 등을 제공해 사용자를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여기에 광고를 하려는 기업에 비용을 부과한다. 신문사가 광고주로부터 얻는 수익을 늘리는 대신 고객에게 무가 신문을 제공하는 전략도 비슷한 논리다. 또는 카카오택시의 사례처럼 초기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양쪽 고객집단(승객, 택시기사)으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기도 한다.
양면시장과 플랫폼 사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리 사회가 고민할 문제도 생겼다. 특히 공정거래 개념이 대입되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승자독식 성향이 강한 플랫폼 업체의 경제활동을 정책적으로 제약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정책은 정당하고 제대로 가능을 할까. 플랫폼 독과점은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가령 카드사라면 가맹점 수, 가입자 수, 결제금액 규모 중 어떤 게 시장지배의 기준인가. 또 한 고객집단을 늘리기 위한 지금 플랫폼 업체의 마케팅이 문제가 없다면, 기존에 불공정 거래라고 봤던 유사한 전략(무료 신문 배포 등)은 어떻게 볼 것인가 등.
이런 문제점은 결국 오래전 만들어진 규제가 갈수록 영역이 넓어지고 복잡해지는 플랫폼 시장 환경에 맞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기존의 정책적 사고방식이나 그에 근거한 제도들이 단기간에 전반적으로 바뀌거나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 결국 각 시장의 특성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다양한 논의를 통해 하나씩 답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경제단신을 하나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큰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일부라는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