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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Nov 24. 2021

사춘기는 왜 오는 걸까

저는 개인적으로 사춘기가 부모와 자녀 간의 '갑을 관계'가 뒤집히는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부모의 입장부터 볼까요. 생물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새끼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경쟁력 있게 성장시켜 다시 유전자를 전달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이렇게만 보면 부모는 처음부터 자식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선택지가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것 뿐일까요? 


자연으로 시각을 넓혀놓고 보면 다른 옵션들이 있습니다. 첫째, 자식의 수를 늘리는 겁니다. 나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들이 여럿이면 그만큼 위험이 분산됩니다. 따라서 몇 녀석이 좀 뒤쳐지거나 불운하게도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본래의 목적에 크게 어긋나지 않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생물은 새끼의 수가 한정적입니다. 낳는 데 들여야 하는 에너지, 기르는 데 들여야 하는 에너지, 속해 있는 생태계 안에서 소비할 수 있는 먹거리의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도 다른 옵션이 있습니다. 좀 키우다가 싹수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새끼를 낳아 대체하는 겁니다. 빠르게 손절하고 갈아타는 거죠. 그럼 한정적인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좀 냉정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생존과 번식은 더 냉혹한 세계니까요.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기회비용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를 대체해서 얻는 효율보다 기존에 들어간 에너지와 시간이 더 커져버리는 순간이 옵니다. 대체해서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커서 오히려 손해가 되는 거죠. 부모의 입장에서는 양육의 시간이 길어지고 그 자식에게 들인 에너지가 클수록 포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건 자식의 수가 적을 수록 더 크게 작용합니다. 특히 인간은 한 배에서 나오는 자식의 수도 적고 임신 기간도 긴 편이죠. 또한 자식의 독립 역시 오래 걸리는 편이기에 양육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또한 큰 편입니다. 


그럼 결국 다시 부모는 자식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기회비용이 쌓이는 순간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돌보지 않는게 경제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적어도 이기간 동안은 부모가 자식에게 있어 갑인 거죠. 


이 전제를 깔고 자식의 입장을 보죠. 자식은 어떻게든 이 혼자 똥오줌 못가리는 기간만 잘 버티면 이기는 게임이 됩니다. 신체적으로 양육자의 돌봄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까지만 버티면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유전자 중에 아이를 예뻐하는 유전자가 많이 살아남은 것일 테고요. 또한 자식은 그전까지는 자아를 실현하기보다는 부모에게 신체/사회적으로 종속된 모습을 보이면서 신체적 성장을 하고 집단 생활 안에도 녹아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자, 이제 시간이 흘러 부모는 갈수록 기회비용이 커지다가 임계점이 오는 시기, 자식은 부모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부모와 자식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 순간이 왔음을 민감하게 느끼게 됩니다. 


자식은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집니다. 심지어 그것이 부모의 판단과 지시에 반하는 것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도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때부터는 자식이 갑이 되는 순간입니다. 다 이긴 게임이죠. 반면 부모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데다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즉 돈을 너무 빌려준 나머지 혹시나 떼어 먹힐까 빚쟁이가 전전긍긍하면서 오히려 을이 돼버리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자식은 그렇게 점점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 외부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걸 자아형성이라 거창하게 부르고, 이때 중2병이 발현하곤 합니다. 


때때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영향력이 체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와 능동욕구가 커지는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여기에는 부모가 보기에 독립이 가능한 시기는 왔을지언정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성장'에는 부모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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